펜이 키보드 보다 강하다
학점은 성취감과 자부심 등의 요인을 조절함으로써 대학생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리고 바로 이 학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는 강의에 대한 노트필기(note taking)다. 최근 들어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책상에 노트북을 꺼내놓고 워드프로세서(한국의 경우 ‘한글’) 소프트웨어를 통해 수업내용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럼 공책에 손으로 필기하는 사람과 노트북으로 필기를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성적이 좋을까? 아니면 차이가 없을까?
이것이 궁금해진 프린스턴의 뮬러(Pam A. Mueller)와 UCLA의 오펜하이머(Daniel M. Oppenheimer)는 손 필기로 수업내용을 정리하는 학생들과 노트북으로 수업내용을 정리하는 학생들 중 누가 더 학업 성취도가 좋은지 측정하였다(Mueller & Oppenheimer, 2014).
첫 번째 실험은 프린스턴 재학생 67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중 한 그룹은 15분 분량의 테드(TED)강의 5개를 시청하면서 손 필기로 강의내용을 정리하였고, 다른 한 그룹은 같은 영상을 노트북의 워드프로그램을 통해 정리하였다. 그리고 강의내용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테스트 문항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사실 확인 문제(factual-recall questions, Approximately how many years ago did the Indus civilization exist? – 인더스 문명은 대략 몇 년 전에 존재했는가?)였고, 다른 하나는 개념이해 확인문제(conceptual-application questions, How do Japan and Sweden differ in their approaches to equality within their societies? – 평등에 대한 일본과 스웨덴의 관점은 어떻게 다른가?)였다.
그 후 참가자들의 조건을 모르는 두 명의 전문가가 참가자들의 답을 채점하였고, 채점한 결과는 표준화(평균을 ‘0’으로 표준편차를 ‘1’로 만듦)하여 분석하였다.
그림 1. Mueller와 Oppenheimer(2014) 실험-1의 결과
그림-1은 첫 번째 연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사실확인 문제에서는 손 필기와 노트북 활용 사이의 수행에 차이가 없었지만, 개념확인 문제에서는 손 필기 조건에서의 정확도가 노트북 필기 조건보다 우수하였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추가적인 분석을 진행하였다. 먼저 노트북으로 필기한 사람들과 손으로 필기한 사람들 사이에 필기량(단어수)에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결과적으로 노트북으로 필기한 사람들이 손으로 필기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단어를 필기하였다(그림-2). 더하여 노트북으로 필기한 사람들과 손으로 필기한 사람들이 강사의 말을 그대로 필기한 비율을 측정하였다. 역시 노트북으로 필기한 사람들이 손으로 필가한 사람들보다 강사의 말을 그대로 따라 쓴 비율이 더 많았다(그림-3).
그림 2. 필기한 단어수 차이(Mueller & Oppenheimer, 2014)
그림 3. 강사의 말 그대로 필기한 비율(Mueller & Oppenheimer, 2014)
즉 노트북으로 필기하는 사람들은 강사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하려고 노력하였고, 손으로 필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한 언어로 필기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이해한 언어로 필기한 사람들의 개념적 지식 이해도가 높았고, 그에 따라 개념적 지식에 대한 테스트에서 더 나은 성취를 보였다.
그렇다면 노트북으로 필기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이해한 말을 필기하도록 지시했을 경우에는 손 필기와의 학업 성취도 차이가 줄어들 것인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UCLA 재학생 151명이 참여하였고, 세 가지 조건에 무선적으로 할당되었다. 한 조건은 손으로 필기하였고, 다른 조건은 별도의 지시 없이 노트북으로 필기하였으며, 세 번째 조건은 노트북으로 필기할 때 강사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적지 말고 이해한 바를 필기하라고 지시하였다(Please try not to do this as you take notes today. Take notes in your own words and don’t just write down word-for-word what the speaker is saying.).
그림 4. Mueller와 Oppenheimer(2014) 실험-2의 결과
그림-4는 이 실험의 결과를 보여준다. 실험-1과 다르게 사실확인 질문에서도 손 필기자가 노트북 사용자보다 높은 정확도를 보였고, 개념적 질문에서도 여전히 더 우수했다. 노트북 사용자에게 자신이 이해한 바를 필기하라는 지시는 별 효과가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오랜 시간 손으로 필기를 해온 인류의 역사가 손 필기와 정보의 정교화를 발달시켜 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최근 기술인 노트북은 있는 들리는 그대로의 내용을 빠르게 타이핑하는 것에는 유리하지만, 정보를 정교화시켜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에는 불리할 수 있다.
“펜은 키보드보다 강하다.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
*더 알고 싶다면,
Mueller, P. A., & Oppenheimer, D. M. (2014).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 Advantages of longhand over laptop note taking. Psychological Science, 25(6), 1159-1168.
http://journals.sagepub.com/doi/abs/10.1177/0956797614524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