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9_변화 프레임,
경제적 선택을 좌우하는 힘
만일 불의의 사고로 손발을 잃거나 하반신이 마비된다면 어떨지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불행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불행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보통 사람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예측이 실제와 다른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적응 능력에서 기인한다. 어두운 극장에 가면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몇 초 지나면 ㅈ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어떤 ‘상태’에 쉽게 적응하는 탓에 ‘변화’에 무척 예민하다. 이것이 우리의 경제적 선택과 판단을 움직이는 또 다른 핵심 원리다.
1. 선택의 갈림길
아래 상황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상황 1>
현재 100만원의 수입이 생겼다고 가정해보다.
A 추가로 50만원을 확실히 더 받을 수 있다.
B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100만원을, 뒷면이 나오면 한 푼도 못 받는다.
조금 적지만 확실한 50만원을 받을 것인가? 확률은 반반이지만 한푼도 못받을 상황을 감수하면서, 추가 수입 100만원의 가능성에 승부수를 던질 것인가?
이제 두 번째 상황을 보자.
<상황 2>
현재 200만원의 수입이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A 무조건 50만원을 내놓아야 한다.
B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00만원을 내놓고, 뒷면이 나오면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상황에서는 어느 쪽 옵션을 선택할 것인가?
만일 당신이 ‘상태 프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면 <상황 1>과 <상황 2>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상태를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 두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 또한 같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변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 상황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상황 1>은 현재 상태에서 돈이 늘어나는 변화(이득의 관점)에서 문제가 기술되어 있고, <상황 2>는 손실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
[1] 카너먼 교수와 트버스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득 상황으로 문제가 프레임되면 모험을 감행하기보다는 안전하고 보수적인 대안을 선택한다.
그러나 동일한 문제가 손실 상황으로 프레임되면 안전한 선택보다는 모험을 감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효과를 두 연구자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t)’라고 불렀다. 프레임의 중요성을 학계에 인식시킨 역사적인 연구라 할 만하다.
이 연구는 우리가 내리는 모험적 선택 혹은 안전 위주의 선택이 객관적으로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프레임 때문에 내려진 선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손실 프레임과 이득 프레임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보라
1) 현금으로 구입하시면 1,000원 할인해드립니다.
2) 신용카드로 구입하시면 1,000원 추가요금이 부과됩니다.
1번과 2번의 상황은 동일하다. 그러나 1번은 이득 프레임을, 2번 프레임은 손실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두 경우가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동일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2번의 경우에 현금 구입을 더 많이 선택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양의 이득으로 오는 만족보다는 동일한 양의 손실이 주는 심리적 충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카너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손실은 이득보다 2.5배 정도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손실 혐오(loss aversion)’라고 한다.
우리는 매장에서는 잘 맞던 구두가 다음 날부터 신기만 하면 발뒤꿈치가 아플 때, 다음과 같이 미련하게 행동한다.
1) 비싼 구두일수록 아픈 것을 잘 참고, 무리해서라도 그 구두를 신고 나가려고 한다.
2) 잘 맞지 않아 더 이상 그 신발을 신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비싼 구두일수록 쉽게 버리지 못한다.
[2] 구두에 관한 시카도 대학교 리처드 테일러(Richard Thaler)교수의 이 재치있는 지적은 손실 혹은 낭비에 대한 인간의 혐오가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어떤 대학생이 게임을 보며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전자레인지용 스파게티를 하나 샀다. 마침 50% 할인 행사를 하고 있어서 절반 가격인 3,0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친구와 경기를 보는 것이 더 재밌을 것 같아 단짝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친구가 먹을 스파게티를 사러 슈퍼마켓으로 갔더니, 세일이 끝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제값인 6,000원을 주고 샀다.
집으로 돌아와 경기 시간에 맞춰 스파게티 2개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일이 생겨 못온다고 한다.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파게티 2인분을 혼자 다 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어느쪽 스파게티를 먹겠는가? 합리적인 답은 ‘둘 중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제값 주고 산 스파게티를 먹겠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제값을 다 주고 산 스파게티를 먹어야 덜 아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이는 ‘매몰 비용(sunk cost)’이다. 제값 준 스파게티를 먹든, 반값 스파게티를 먹든 그 중 일부의 돈이 돌아온다든지, 손해를 본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제값에 산 걸 먹어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손실에 대한 원초적 거부다.
3. 현상 유지에 대한 집착
어느 날 당신 앞에 다음과 같은 행운의 상황이 찾아왔다고 상상해보자.
<상황 1>
당신은 그동안 목돈이 없어 별다른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큰아버지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현금‘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었고, 이제 아래 옵션들 중 어디에 얼마씩 투자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1) A회사의 주식
– 향후 1년 동안 가격이 30% 상승할 확률 50%
– 가격이 20% 하락할 확률 30%
– 가격 변동이 없을 확률 20%
2) B회사의 주식
– 향후 1년 동안 가격이 100% 상승할 확률 40%
– 가격이 40% 하락할 확률 30%
– 가격 변동이 없을 확률 30%
3) 국채 : 1년 간 거의 확실하게 9% 이득 보장
4) 지방채 : 1년간 약 6% 이득 보장(세금 면제)
당신이라면 이 네 옵션에 각각 얼마씩 투자하겠는가? 이번에는 당신이 처한 상황이 다음과 같다고 가정해보자.
<상황 2>
당신은 그동안 목돈이 없어 별다른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큰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았는데 유산이 전부 ‘A 회사의 주식’이었다. 이제 그 주식을 그대로 보유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것인지를 고민 중인데 위 네 가지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
[3] 위의 상황은 경제학자 윌리엄 새뮤얼슨(William Samuelson)과 리처드 제크하우저(Richard Zeckhauser)가 연구 참여자들에게 실제로 제공한 것들이다.
두 상황에 주어진 선택 대안들은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첫 번째 상황에서는 유산이 현금이지만 두 번째 상황에서는 유산이 전부 A회사의 주식이다. 다시 말해 A 회사 주식이 첫 번째 상황에서는 중립적인 대안으로 프레임되어 있고, 두 번째 상황에서는 ‘현재 상태’로 프레임 된 것이다. 이 연구의 주된 관심은 ‘A회사의 주식’에 대한 선택이었다.
새뮤얼슨과 제크하우저는 A 회사의 주식이 ‘현재 상태’로 주어진 경우에 그 옵션을 유지하는 경향성이, 그 옵션이 ‘중립적 대안’으로 제시되었을 경우 그 옵션을 새롭게 선택하는 경향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상황은 네 가지 옵션 중 어느 것이 현재 상태로 주어진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이 연구 결과는 어떤 대안이든지 그것이 ‘현재 상태’로 주어져 있으면 사람들은 바꾸기 보다는 유지하려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언가를 유지하려 할 때 그 결정은 최선의 것이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현재 상태’였기 때문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로 주어져 있는 대안을 ‘중립적인 대안’으로 리프레임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 심지어 기존의 직업까지도 처음 접하는 중립적인 대안으로 리프레임해서 본다면 아마도 많은 선택들이 달라질 것이다.
4. 소유 효과
리처드 테일러 교수는 코넬 대학교 재직 당시, 코넬 대학교의 로고가 새겨진 기념 머그잔을 경제학 시간에 일부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4] 그런 후에 테일러 교수는 일종의 경매시장을 열고 컵을 받은 학생들에게 최소 가격을 적게 했다. 반대로 컵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어느정도의 가격에 살 용의가 있는지 적게했다.
컵을 소유하고 있던 학생들이 적어낸 판매가의 평균치는 5.25달러, 컵을 사려고 학생들이 적어낸 구입가의 평균치는 2.75달러에 불과했다. 똑같은 컵이었는데 왜 팔려는 학생은 사려는 학생들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적어냈을까? 돈을 주고 구입한 컵이 아니므로 본전을 찾으려는 심리 때문이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바로 프레임 때문이었다. 컵을 소유했던 학생들은 컵을 파는 상황을 손실 상황으로 프레임했고, 컵을 사고자 했던 학생들은 컵을 새로 얻는 이득 상황을 프레임했던 것이다. 판매하려는 가격과 구매하려는 가격의 차이를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라고 한다.
일단 무엇이든 내 소유가 되고 나면 그것의 심리적 가치는 상승하게 된다. ‘내 것’의 프레임으로 보는 사람과 아직은 내 것이 아닌 중립적으로 보는 사람이 느끼는 물건의 심리적 가치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5. 후불제의 위력
가정불화를 극복하지 못한 부부가 이혼을 결정했는데, 하나뿐인 아들의 양육권을 놓고 서로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양육권 결정은 법원에 맡겼다.
당신이 이 사건의 배심원이라면 어느 부모에게 양육권을 주겠는가?
<부모 1> : 보통 수준의 수입, 건강 상태 보통, 업무량 보통, 아이와의 사이는 보통 수준, 사회생활 보통 수준
<부모 2> : 평균 이상의 고수입, 사소한 건강상 문제 있음, 업무상 출장이 잦음, 아이와의 사이는 친밀함, 사회생활 아주 활발함
[5] 프린스턴 대학교의 엘다 샤피어(Elder Shafir)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 64%가 <부모2>에게 양육권을 맡겨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판사다 배심원단에게 질문한 요청이 어느 부모에게 양육권을 주어야하는가? 가 아니라 어느 부모에게 양육권을 주면 안되는가?였다고 해보자. 질문의 방향, 즉 프레임이 중요하지 않다면 동일한 답변이 나와야하지만, 무려 55%의 사람들이 <부모2>에게 양육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배심원 입장에서 보자. 안되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장점보다 단점을 찾는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그러니 <부모 2>가 눈에 띈다.
그러나 주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단점 대신 장점을 찾는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프레임에 따라 양육에 적합해보이기도 하고, 부적합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교묘한 프레임 효과가 후불제 마케팅에도 작용하고 있다. 선불제로 물건을 살 경우 소비자들은 잘못 선택했을 때 생길 부담 때문에 대개 장점을 찾는 프레임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후불제로 주문한 경우는 ‘이 물건이 반환할 정도로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가?’의 프레임, 즉 단점을 찾는 프레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따라서 심각한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한 반환을 요구하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된다. 처음 후불제로 물건을 주문할 때는,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환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고객의 프레임은 돌변하며 웬만해서는 반환하지 않게 된다.
이런 후불제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물건을 받은 이후에도 “이 물건을 꼭 사야 할 뚜렷한 장점이 있는가?”의 프레임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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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9를 나가며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반드시 던져봐야 할 질문은 “내가 내린 선택이나 결정이 절대적으로 최선의 것인가, 아니면 프레임 때문에 나도 모르게 선택되어진 것인가?”이다. 어떤 ㅡ레임으로 제시되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결제적 지혜의 핵심이다.
자신의 선택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현상 유지적일 때, 소심한 성격을 탓하기 보다는 그 선택이 어떻게 프레임되어 있는지부터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경제적 선택은 총성없는 프레임 전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