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친 마음을 회복하고자 할 때 그 마음은 서서히 풀어질 수 있으며, 아팠던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강렬한 경험 조각은 우리 내부 어딘가에 남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각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고 변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어떤 자극에 의해 행동하는 에너지, 즉 동기를 지니고 있다. 동기가 원치 않는 결과 가능성에 의해서 크게 반응한다면, 즐거운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피하는 행동에만 몰두할 수 있다. 이렇게 불균형한 행동은 활력이 크게 저하된 우울 증상에 해당한다.
동기를 개인의 기질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에 행동접근체계(Behavioral approach system; 이하 BAS)와 행동억제체계(Behavioral inhibition system; 이하 BIS)가 있다. BAS가 높은 사람은 보상에 민감하여 보상을 경험하기 위한 노력으로 접근 행동을 증가시키며, BIS가 높은 사람은 보상의 상실에 민감하여 원치 않는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회피행동을 증가시키다.
동기체계의 불균형과 우울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듯이, 임상적으로 우울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BAS의 비활성화와 BIS의 활성화를 보고한 바 있다. 또한, 주요 우울장애로부터 회복한 사람은 우울 증상이 전혀 없는 사람과 BIS는 유사하게 보고했지만, BAS는 지속해서 활성화되지 않음을 보고하였다.
BIS와 BAS가 기질적 성향이라면, 목표는 이러한 생물학적 민감성을 실제 행동으로 변환한 인지적 메커니즘이다. 목표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행동을 지시하는 자기조절의 형태로 나타난다. 접근목표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을 수반하고, 회피목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수반한다. 이러한 목표 성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목표몰입과 구체적인 방법을 명시하는 자기조절전략인 실행 의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Vergara와 Roberts는 우울에 취약한 사람의 동기, BIS/BAS와 회피/접근목표 성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우울장애를 한 번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교해 우울장애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권석만, 2003) 우울에 취약하다고 본다. 선행연구에 의하면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은 BIS는 지나치게 활발하여 회피목표를 많이, BAS는 활발하지 않아서 접근목표를 적게 생성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과거에 우울증을 경험했던 사람과 우울증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을 비교하여 우울에 취약한 특성이 동기와 관련하여 어떻게 두드러지는지 보고자 하였다.
연구 참가자는 83명의 학부생으로, 과거에 주요 우울장애 증상이 있었던 사람 43명과 지금까지 주요 우울장애 증상이 없었던 사람 40명이었다. 즉, 우울에 취약한 사람을 알아보기 위하여 현재 우울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연구에서 제외되었다. 과거와 현재까지의 우울 경험을 알아보기 위하여 주요 우울장애 기준과 관련한 10문항을 통해 스크리닝하였고, 두 집단 조건에 해당하는 참가자를 각각 모집하였다. 첫 번째 세션에서 정신과적 구조화된 면접을 진행하였고, 일주일 후에 다음과 같은 두 번째 세션을 진행하였다: (1) 참가자의 BIS와 BAS 활성화를 알아보기 위하여 처벌 민감도와 보상 민감도를 측정하였다. (2) 목표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75초 동안 ‘나는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문구를 통해 접근목표와 회피목표를 작성하였고, 각각의 목표 수를 파악하였다. (3) 가장 중요한 목표에 대한 목표몰입과 실행 의도를 측정하였다.
과거에 우울장애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교해 일반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우울 증상을 보고하기 때문에 분석 과정에서 우울 증상을 고려하여 통제하였다. 우울 증상을 통제한다는 것은 우울장애를 경험했던 사람이 우울 증상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반영하여 그 외의 다른 차이를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기 및 목표 성향과 관련하여 과거 우울장애 경험이 있던 사람은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교해 회피목표 수를 1개 더 많이 보고하였고, 접근목표 수에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현재 우울 증상 통제 후에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따라서 우울장애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더 많은 회피목표를 세웠다는 것은 회피목표를 설정하는 인지적 경향을 의미하고, 이러한 특징이 우울에 대한 취약성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기 및 기질과 관련하여 과거 우울장애 경험이 있던 사람은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교해 보상 민감도 2.1점, 처벌 민감도 3.2점을 더 높게 보고하였다. 반면, 현재 우울 증상 통제 후에 보상 민감도에서는 집단 간 유사한 차이를 보였으나, 처벌 민감도에서는 집단 간 차이가 사라졌다. 통제 전에만 과거 우울장애 경험이 있던 사람이 처벌 민감도를 높게 보고하는 것은 우울 증상이 더 강하게 나타난 상태의 영향으로 보인다. 선행연구와 반대되는 특이한 결과는 우울장애를 회복했던 사람에게서 BAS의 활성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본 연구에서 BAS의 활성화에 대한 사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울장애를 회복한 사람 사이에서 BAS가 활성화됨을 알 수 있다.
그 외로 접근-회피목표와 상관없이 목표몰입과 실행 의도에서도 집단 간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우울 증상을 통제한 후에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목표몰입 수준과 실행 의도 수준은 우울에 대한 취약성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과거 우울을 경험한 사람은 우울에 대한 취약성으로 BAS가 활성화되거나 회피목표를 더 많이 보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본 연구에서는 예상과 달리 BAS와 접근목표, BIS와 회피목표 간의 관련성이 나타나지 않아서, 기질과 목표가 동기의 다른 수준에서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우울장애의 회복 이후에도 우울 증상 외에 기질과 목표 성향의 상호영향력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Vergara, C., & Roberts, J. E. (2011). Motivation and goal orientation in vulnerability to depression. Cognition & Emotion, 25(7), 1281-1290.
*표지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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