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_CHAPTER 4 :마음의 눈에 존재하는 맹점
우리는 모두 안고 있는 취약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할 때 체계적인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해보는 것은 마치 공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행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행위 중 하나이며, 우리는 이것을 날마다 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항상 희망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원하는 모습 그대로 미래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슬픔은 저 멀리 사라질 것이라 확신하다.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하는 온갖 상황에서 여러 대안이 제공될 미래를 상상해보고 각각의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생각해본다.
우리가 최상의 삶이라고 예상했던 것이 실제로는 최악의 것일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상상을 통해 미래를 선택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실수를 범할 수 있고 또한 그 실수로 인해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 실수는 무엇일까? 상상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도구이다. 그러나 상상이라는 도구에도 결점은 있다. 이번 장과 다음 장에서 그 첫번째 결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 현실을 왜곡하는 뇌의 마술
– 뇌가 채워 넣는 기억
인간의 뇌는 수백개의 스냅샷을 찍어내고 수백만 개의 소리를 기록하며 수많은 냄새, 맛, 감촉 등 수많은 것을 기억속에 추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그 방대한 양의 경험을 두 귀 사이에 있는 조그만 저장고에 모조리 집어넣을 수 있을까? 우리는 경험 전체를 그대로 기억속에 저장하지 않는다. 그 경험들은 저장을 위해 몇 가지 중요한 실마리로 축소되고 압축된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그 경험을 기억하고자 할 때, 뇌는 그 경험을 실제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압축해놓은 정보 덩어리를 재조합한다.
기억으로 재구성된 것이 그대로의 과거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많은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빨간 자동차가 양보 신호를 받고 나아가다가 우회전을 한 행인을 치는 일련의 슬라이드 사진들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후 몇몇 참가자에게는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고, 나머지 사람에게는 빨간 자동차가 정지 신호를 받아 멈춰 서 있을 때 그 옆으로 또 다른 차가 지나갔나요? 라는 질문을 하고 나서 모든 참가자에게 두가지 그림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빨간 자동차가 양보 신호로 접근해가는 그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빨간색 자동차가 정지 신호로 접근해가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아까 실제 보았던 장면을 골라야 했다. 참가자들은 본 것을 기억에 저장했다면, 양보 신호로 접근해가는 빨간 차를 골라야한다. 하지만 질문을 받지 않은 참가자들은 90% 이상이 양보 신호를, 질문 받은 집단은 80%가 정지 신호 그림을 선택했다. 참가자들의 뇌는 슬라이드를 본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했던 것 중 기억나는 것을 짜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심리학자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사건이 발생한 후에 습득한 정보가 사건 그 자체에 대한 나중 기억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밝혀 냈다. 이 현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두가지에 대하여 확신하게 되었다. 첫째, 기억 행위는 실제로 저장되지 않았던 세부사항을 나중에 ‘채워 넣는’ 것까지 포함된다. 둘째, 채워 넣는 작업은 무의식적으로 재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파하지 못한다.
– 뇌가 채워 넣는 경험
채워넣기 현상은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왜곡한다. 그리고 그 현상은 우리의 지각 과정에도 영향을 준다. 눈동자에는 신경다발이 지나가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맹점에는 시각 수용기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이 지점에 들어오는 사물의 상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맹점이 자리한 지점이 점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이는 당신의 뇌가 그 맹점 주변에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맹점 자리에 무엇이 보일지를 추측하여, 빈 장면들을 절묘하게 채워넣기 때문이다.
당신의 뇌는 없는 것을 발명하고 창조하며 만들어낸다! 당신의 자문을 구하지도 않으며 당신에게 승인을 받지 않는다. 최선의 추측을 토대로 현재 빠진 부분을 알아서 채워 넣는 것이다. 이 ‘채워 넣기’ 속임수는 단지 시각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 연구에서는 문장을 테이프로 녹음한 후 한 단어의 첫 번째 s발음을 기침으로 대체했다. 참가자들은 문제없이 기침 소리를 들었음에도 테이프에 없던 s 소리도 들었다. 그들의 뇌는 그 발음이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친절하게도 스스로 그것을 채워 넣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속임수를 알더라도 여전히 속임수가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각 체계에 대하여 아무리 심오하게 이해해도,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그 속임수는 실패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줄 생각이다.
2. 현실과 주관적 경험 사이의 혼동
– 이상주의자와의 만남
뇌는 무엇을 믿는 것이지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적 관점을 지닌 철학자들의 유일한 의문점은 뇌가 어떻게 놀랍도록 믿을 만한 형상을 제공하느냐는 것이다. 칸트는 우리가 무언가는 지각하는 경험은 우리 눈이 세상의 이미지를 그대로 뇌로 전달할 때 일어나는 생리적인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고 하였다. 오히려 지각 현상은 눈이 보는 것들이 우리가 이미 생각하고 느끼고 알고 원하고 믿던 것들과 합쳐지는 심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현실 지각은 감각 정보와 현존하던 지식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합작품인 셈이다.
역사가 윌 듀런트는 칸트의 생각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업적을 남겼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하나의 건축물이자 완성된 결과물이며, 누군가는 그것을 하나의 제조된 물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사물이 형태를 만들어내는 데 자극제 역할을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그 형태를 주조하는 데 기여한다.” 지각은 하나의 그림이지 사진이 아니며, 이 그림에는 묘사된 사물의 속성과 아울러 그것을 그린 화가의 재주도 담겨있다.
이 이론은 획기적이었고 이후 이 이론을 확장해 세상을 이해해나가는 인간의 인지적 성장 과정에까지 적용했다. 1920년대 장 피어제는 어린아이들이 종종 자신이 지각한 사물의 모습과 사물 자체가 보유한 실제 속성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어린이는 세상에 있는 것과 마음속에 있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 각자가 그들의 마음속에 각기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극단적인 현실주의자에서 이상주의자로 옮겨간다. 그들은 지각 경험은 세상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닌, 일좀의 관점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 현실주의로부터의 탈출
그러나 현실주의를 탈피한다고 해서 그렇게 멀리가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특정한 상황에서는 성인들조차 현실주의자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한 사람에게는 큰트럭과 중간크기의 트럭, 그리고 작은 트럭까지 다 볼 수 있으며 다른 한사람은 작은 트럭을 볼 수 없는 실험에서, 시야가 폐쇄된 사람이 완전한 시야를 확보한 사람에게 특정한 물건을 정해진 위치로 옮기라고 지시하였다. 이 상황에서 지시자가 “작은 트럭을 맨 밑 칸으로 옮기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행자가 이상주의자라면 아마 중간 크기의 트럭을 옮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시자의 관점에서는 중간 크기의 트럭이 가장 작은 트럭이라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한편, 수행자가 현실주의자라면 지시자의 관점에서 말하는 작은 트럭이 사실은 중간트럭임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 트럭 중 가장 작은 트럭을 옮길 것이다. 실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중간 크기의 트럭을 옮겼다. 이와 다르게 이상주의자들처럼 행동한 경우에도 손과 눈 추적 장치를 사용했을 때, 지시사항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의 작은 트럭을 보았으며, 반사적으로 작은 트럭을 옮기려는 상황에서야 직전에 적합한 중간 트럭을 옮기라는 지시를 뇌가 손에게 내린 것이다. 손은 이상주의자처럼 행동했을지라도 뇌는 순간적으로 현실적이었음을 눈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우리의 지각 과정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주의적 버릇이 남아 있다. 이 논리를 연장시킨다면 우리는 어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경험이 그 사물의 속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자동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나중에 가ㅓ야, 그것도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능력이 있는 경우에만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 세계는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한다.
우리는 뇌가 기억과 지각의 조각을 다시 짜 맞춘 기억과 지각의 조각을 다시 짜 맞추는 고도의 사기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이렇게 뇌가 짜 맞춘 기억과 지각의 구체적인 내용 하나하나는 매우 강력해서 그것의 허구성을 밝혀내기가 무척 어렵다.
3. 뇌가 말해주지 않았던 부분
상상에는 별다른 노력이 들지 않는다. 최소한의 의욕만 있다면 우리의 뇌가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마음의 그림들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상상의 결실을 머릿속에서 경험한다. 지각과 기억처럼 이런 마음속 그림도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그림은 의식의 감독 없이 자체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에 기억과 지각 경험을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이듯, 상상도 정확한 것으로 가정하고 시작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미래 사건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예측할 때 뇌가 항상 채워넣기 속임수를 사용한다는 것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일부 참가자들에게는 미래 사건에 대한 예측을 하기 전에 그 사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속의 모든 세부사항을 사실로 가정하도록 지시하였다. 나머지 참가자에게는 세부사항을 묻지도 않았고 어떠한 가정도 요구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 모두 자신의 예측을 확신했다. 왜일까? 설명을 가정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상상할 때 무의식적으로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이들은 그 모든 세부사항이 허무맹랑한 이미지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정확한 내용에 근거한 것이라고 가정했다.
우리는 종종 미래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예상은 뇌가 최선을 다해 마련해준 이미지에 기초한 것이지만, 이 경우는 그 이미지가 실제와는 완전 딴판이다. 요점은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종종 우리 마음에 있는 맹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미래의 사건 그 자체에 대해 틀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형수도 죽은 피셔보다 부자인 이스트먼으로 사는 것이 더 즐거울 거라고 생가갛ㄴ다. 그러나 우리의 뇌가 얼마나 민첩하게 두 삶의 빈 내용을 채워 넣는지, 또한 그렇게 채워진 내용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를 감안해서 지나친 확신은 재고해야 한다.
4. 맺음말
당신에게 뇌를 스스로 선택하라고 했다면, 아마도 온갖 수작을 부리는 뇌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선택권이 없다. 채워넣기 기술을 모르는 뇌를 가졌다면 당신은 아마 불완전한 기억, 형편없는 상상력, 그리고 가는 곳마다 작은 블랙홀 같은 것이 따라다닌다고 느낄 것이다. “개념이 없는 지각은 맹목적인 것이다”라는 칸트의 말은 우리에게 채워넣기 기술이 없다면 우리는 현재와 같은 주관적 경험을 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뇌가 채워넣기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왠지 미래가 우리의 상상대로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5장에서) 더 큰 골칫거리는 뇌가 상상에 첨가하는 내용보다 거기에서 빠뜨리는 내용 때문에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