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_CHAPTER 9 : 현실에 대한 면역
영리한 한스 이야기 – 말이 시사 사건이나 수학문제, 그리고 많은 주제에 대한 질문에 앞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는 방법으로 답을 맞힐 수 있었다. 일련의 실험 끝에 영리한 한스(말)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말의 내용이나 글이 아니라 말의 주인인 오스텐의 몸짓 언어였다는 점을 밝혀냈다.
영리한 한스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오스텐도 사기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한스에게 정답을 유도한 것이다. 오스텐의 속임수는 정교하고도 효과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오스텐도 모르는 무의식적 수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도 같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한 사실을 접하면 그것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잘 기억하며, 그 사실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도 관대하게 적용한다. 다만 오스텐이 자신의 무의식적 속임수를 눈치 채지 못했듯 우리도 우리의 이런 속임수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사용하는 이런 속임수를 책략이나 전술이라 부르는데 이런 말들은 사전계획, 심사숙고 등의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속임수를 사용하는 약삭빠른 음모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할 때 대개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사람들은 행동의 이유에 대해 질문 받으면 그럴 드한 이유를 만들어낼수는 있다.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조작할 때, 그것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좋은일이다. 의식적인 노력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자신이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사ᅟᅵᆯ에 더해 치사한 자기기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처지가 된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사실을 요리해내는 것의 이점은 그것이 잘 먹혀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반대 급부로 인해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게 된다.
1. 과거에 대한 평가를 미리 예측하기
우리는 미래의 어떤 사건을 상상할 때 떠오르는 끔찍한 생각이 나중에 우리가 그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회상할 때도 동일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요역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이 어떤 사건에 대한 경험 후에 자연스럽게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관점의 변화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미래의 감정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한 연구에서 한 집단에게는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한 사람이 인터뷰 내용을 볼 것이며 다른 집단에게는 몇 명의 심사위원이 함께 인터뷰를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릴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인터뷰 후 참가자들에게 탈락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예측하게 하였으며, 몇분 후에 연구자가 실험실에 와서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탈락했다고 알려주었다. 이후 다시 기분을 측정하였다.
두 조건 참가자들 모두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심사위원의 수에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명의 심사위원보다 여러명의 심사위원에 의해 탈락한 경우, 더 큰 상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그럴까?
사실 어떤 한 사람에게 이런 거절을 당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대개는 금방 잊게 된다.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이런 경험의 모호성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사람의 사기를 꺽어놓는다. 여기에는 어떤 모호성도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아무리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어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참가자들은 이런 사실을 미리 고려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자신이 탈락 결과를 상상하게 했을 때 그들이 끔찍한 고통만 상상했을 뿐 우리의 뇌가 그 심사위원을 비난함으로써 고통을 감소 시킬거라는 점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회란 우리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가 우리가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고 느낄 때 경험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행동은 미래의 후회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결정된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왜 후회하는 지에 대해 나름대로 정교한 이론들을 가지고 있고, 그 이론에 따라 후회할 만한 경험을 미리 회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이론이 가끔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행동한 것 보다 행동하지 않은 것을 더 후회한다. 한가지 이유는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는 행동하지 않은 것보다 행동한 것에 대해 훨씬 더 쉽게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겁이 많은 것보다는 대담한 것에 대해 더 쉽게 합리화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더라도 저질러봐야 할 때 주저하고 만다.
2. 심리적 면역 체계를 작동시키는 요인들
– 강도 요인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 역시 일종의 방어체계로 위와 동일한 원리를 따른다. 우리의 감정이 몹시 상하면, 심리적 면역체계는 사실을 조작하고 비난의 대상을 바꾸는 방법 등을 동원해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극도의 고통은 그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심리적 면역체계를 작동시키지만, 경미한 고통은 그렇지 않다는 다소 반직관적인 사실이 우리가 미래의 우리 감정을 예측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초래한다.
요약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심리적 방어체계가 경미한 고통보다는 강한 고통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나. 따라서 강도가 서로 다른 불행에 맞닥뜨렸을 때 자신이 각각에 대해 어떤 감정적 반응을 보일지 잘못된 예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 불가피성 요인
고통의 크기만이 심리적 방어체계 작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저질렀다면 절대 참을 수 없는 행동을 형제나 자매가 저지른 경우에는 왜 용서해주는 것일까?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상황보다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작동한다.
우리는 경험을 바꿀 기회가 없는 경우에만 그 경험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꿀 방법을 찾게 된다. 피하거나 도망치거나 뒤바꿀 수 없는 상황은 심리적 면역체계를 발동시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지만, 정작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예상하지 못한다.
우리는 심리적 면역체계를 발동시키는 요인들을 예상하지 못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선택을 내린 후에 그 결정은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위협당할 때, 우리는 그 자유를 회복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결정을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에는 유익과 더불어 그 대가도 있다. 심리적 방어체계가 발동하지 않은 사람은 단점에 더 특별히 주의를 두게 된다. 우리는 자유가 제공해주는 유익은 쉽게 상상하지만, 자유 때문에 오히려 훼손될 수 있는 즐거움은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3. 설명되지 않은 사건의 강한 여운
즐거움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즐거움과 고통을 관련 상황과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이 그러한 감정들을 왜, 어떤 방법으로 일으켰는지 반드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연상과 달리 설명은 즐거움이나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해주고, 무엇이 관련 없는 것인지도 알려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역겨움이라는 느낌에 관해 과실파리가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설명은 우리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경험의 본래 특성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이미 앞에서 소개한 대로 우리는 불쾌한 것을 경험하고 나면 기분을 회복시켜주는 방향으로 그 경험을 재빨리 설명해버린다. 놀라운 사실은 설명이 불쾌한 사건의 영향을 감소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쾌한 사건의 영향력 또한 감소시킨다는 점이다.
설명되지 않고 미궁으로 남겨진 사건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감정적인 영향력이 크다. 첫째, 설명되지 않은 사건은 드물고 이례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어떤 사건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설명을 듣고 나면 그 일이 미래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사건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래서 석양이 일식보다 더 멋진 광경을 연출하지만, 일식이 석양보다 덜 흔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일식을 보며 더 놀라워한다.
둘째, 설명되지 않은 사건은 계속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그 사건을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그 사건은 미스터리나 수수께끼로 남아 우리 마음 저편으로 넘어가는 법이 없다.
결국 설명하는 행위는 어떤 사건을 평범하게 보이게 하고, 그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에 그 사건으로 인한 정서적 영향을 빨리 감소시켜 버린다. 흥미로운 점은 사건을 실제로 설명하지 않고, 그저 설명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기만 해도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 실험에서 도서관에 있는 대학생들에게 다가가 1달러짜리 동전이 붙어있는 인덱스카드 두 장 가운데 하나를 건네주고 사라졌다. 당신이 보기에도 그들의 행동은 뭔가 설명이 필요한 흥미로운 행동일 것이다. 카드 두 장 중 하나에는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가 이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라는 두 문구가 더 실려 있었다. 이 질문은 사실 아무런 정보도 추가해주지 않지만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문구가 그 사건에 대한 설명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5분후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앞서 제시된 별 의미 없는 두 문장이 들어간 카드를 받았던 학생들이 그 문구가 없는 카드를 받았던 학생들보다 행복의 정도가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확실히 가짜 설명이라 할지라도 일단 설명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 사건을 정리하고 다른 사건으로 생각을 옮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설명으로 인한 명료성과 확실성이 실제로는 행복을 감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선택하고 미스터리보다는 명료한 것을 선택한다. 시인 존 키츠는 위대한 작가들이란 “불확실성, 미스터리 그리고 의심 앞에서 굳이 사실과 이유를 찾아나서지 않는 여유로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절반의 내용에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과 과실파리를 구분해주지만,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흥분을 잠재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4. 맺음말
우리의 눈과 뇌는 서로 음모를 꾸몄으며 모든 음모가 그렇듯 우리가 알지 못하도록 의식세계 저 편에서 서로 협약을 꾸몄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의 모습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에도 우리가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음로를 꾸밀 것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런 무지로 인해 우리는 미래의 고난으로 경험할 고통의 강도와 지속 기간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는 우리의 눈과 뇌가 벌이는 작업에 역행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견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에 더 깊은 주의를 기울이기도 하고, 그런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과 일부러 어울리기도 하며 그런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불쾌한 경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설명해버린다. 그러한 설명은 부정적인 것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 하지만, 긍정적인 경험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부작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