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B_방어기제 용어 해설
1. 성숙한 방어기제와 미성숙한 방어기제
방어기제를 설명하기 위해 가공의 여성을 예로 들겠다. 그녀는 서른살에 결혼했으며 한 번 유산했다. 그 뒤로 아이를 가지기 위해 7년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녀는 늘 여동생에 비해 자신이 사회 부적응자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서른 여덟살에 암 검사 결과 초기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자궁을 들어냈다.(그녀의 갈등이 본능적 소망, 부모가 되고 싶다는 기대, 현실,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요구 등과 얽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라.) 아래 짤막한 이야기들은 자궁절제술 이후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반응들을 묘사한 것이다.
2. 미성숙한 방어기제
2-1. 투사
수술 후 상처 부위가 약간 감염되자, 그녀는 화가나 병원의 비위생적 환경을 비난하는 장문의 편지를 신문사에 보냈다. 그녀는 의사가 제때에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 의료사고 소송을 낼까 궁리중이다.
2-2. 해리
마취에서 깨어난 뒤, 그녀는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대신 종교적인 경험을 했다고 즐거워했다. 그녀는 내면적으로 굉장한 행운을 경험했다고 느꼈으며, 신의 은총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수술을 무사히 끝내게 되었다고 말했다.
2-3. 환상
그녀는 간호사에게 문병객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부탁했다. ‘슬퍼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녀는 꽃을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아기들 사진만 보며 지냈다. 신생아실로 내려가 만약 그곳에 누워 있는 아기들이 자신의 아기라면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꿈꾼다. 한 번은 당직 간호사가 브람스의 자장가를 큰 소리로 휘파람 불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2-4. 건강염려증
그녀는 암이 임파선으로 전이될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병문안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과 사타구니에 생긴 작은 덩어리에 관해 지칠줄 모르고 끝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2-5. 수동 공격형
인턴이 정맥주사를 놓으면서 혈관을 찾지 못해서 고생하자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선생님은 아직 의대생이니까 혈관을 찾기가 쉽지 않을 테죠.”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녀는 자신의 링거액이 다 떨어진 것을 보았다. 새벽 4시였다. 그녀는 야간 당직 간호사를 호출한 다음 인턴을 깨워 링거를 갈아달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쾌활한 목소리로 인턴에게 좀 더 일찍 간호사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병원사람들이 너무 바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당연히 체크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2-6. 행동화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그녀는 한 달 사이에 네 명의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함으로써 남편에게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 그 전까지는 남편 말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3. 성숙한 방어기제
3-1. 이타주의
수술한지 한달 뒤, 그녀는 수술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모아 부인과 수술환자들을 문병하고 위로해주었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도 알려주고 조언도 해주었다.
3-2. 억제
그녀는 병원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구약성서 중 전도서를 읽었다. 그녀는 눈물 젖은 손수건을 남편에게 내보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썻다. 실뽑는 날도 (고통스러웠지만) 불평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아기 사진이 자신을 심란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서는 평소 좋아하던 잡지였지만 육아 특집이 실린 잡지를 일부러 읽지 않았다.
3-3 .승화
그녀는 조카들로부터 건강을 염려하는 안부 편지를 받고 기뻐했다. 그녀는 주일 학교에서 취학 전 아동을 맡아 가르치기로 했다. 그리고 동네에서 발행하는 주간 소식지에 아이 없는 이모의 씁쓸달콤한 즐거움을 시로 표현했다.
3-4. 유머
그녀는 <플레이보이>지에 나온 자궁절제술의 정의를 읽으면서 갈비뼈가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자궁절제술이란 “유모차를 내버리고 아기 놀이터만 놔두는 것”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왜 그렇게 즐거워하는지 놀라 궁금해하는 간호사들에게 “이 모든게 아이러니컬 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3-5. 예견
담당 의사는 수술 후 그녀가 너무나 의연하게 잘 견디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아이 문제로 속을 끓인 것을 후회한다고 담담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의사가 놀랐던 것은 수술 전과 후의 태도다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수술 전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합병증을 걱정하면서 두 번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라며 울고불고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