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_영성과 종교, 그리고 노년
희망과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떠한가? 깊은 믿음과 영성 속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 역시 사랑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 만큼이나 소중한 일이다. 기본적인 신뢰와 희망은 미래에 대한 믿음에 달려있고, 통합의 임무를 완성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믿음 위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종교적인 믿음이나 영성이 더 깊어지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지혜와 마찬가지로 영성 여시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진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전체 연구 대상자들을 두고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종교나 영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1. 영성과 종교는 어떻게 다른가
사람들은 특정 종교나 전통적인 신념이 주는 확실성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청소년들은 종교적 믿음을 얻은 뒤에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기도 한다. 정체성은 성인 발달의 첫 번째 과업이며, 종교는 종종 청소년들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1] 에릭슨은 “청소년들은 악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적대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영구불변하는 우상이나 관념을 궁극적인 정체성의 수호자로 내세울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라고 했다.
성숙한 성인이 되어갈수록 사람들은 역설과 모호함을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성숙은 국수주의를 범민족주의로 변화시키고, 종교의식을 영성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성인발달연구를 통해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하나는, 영성이나 종교적 믿음이 성공적인 노화에 그다지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노년, 성숙한 방어기제, 생산성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이었다.
우선 종교와 영성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미성숙한 종교적 신념 |
성숙한 영적 확신 |
에릭슨의 정체성 과업 |
에릭슨의 통합 과업 |
도그마 |
메타포 |
전능하고 폐쇄적임 |
자발적이고 열려 있음 |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네.”(부모–자식 관계) |
“상처를 입었으니, 신이어 상처를 치유해 주소서.”(협력 관계) |
수치심, 의무감, 심판 |
긍정, 감사, 용서 |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바람 |
지옥에 다녀온 결과 |
‘종교’라는 용어는 다른 종교와 구분하기 위해 선을 확실하게 긋는 배타적인 믿음을 내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성’은 온 세상을 품어안는 포괄적인 믿음을 말한다. 앞의 표에서 종교와 영성의 차이를 좀 더 뚜렷하게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의 표에서는 종교적 신앙이 깊은 사람이 성숙할 수도 있고, 반대로 영성이 깊은 사람이 극히 자기중심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종교에는 강령과 교리문답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영성에 필요한 것은 언어를 초월하는 감정과 경험이다. 종교는 모방적이며 외부로부터 오지만, 영성은 ‘나의 능력, 희망, 경험’에서 나온다.
종교적 신념들은 대부분 도그마를 수반하지만 영적인 확신은 메타포를 내포한다. 도그마와 메타포의 차이는 무엇인가? 메타포는 자유로이 열려있고 즐거우나 도그마는 융통성이 없고 진지하다. 메파토는 비유와 직유로 의미를 전달하지만 도그마는 성경속에 적혀있는 내용 그대로를 전달한다.
심리학자들의 오랜 연구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의 인식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작용에서 시작해 점차 세계에 대한 좀 더 복잡하고 은유적인 관점으로 발전한다.
[2] 저명한 유아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어린아이들의 도덕성은 종교적 가르침과는 완전히 별개로 성숙한다고 지적했다.
피아제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의 도덕률은 처음 자기 중심적 성격을 지니다가 점차 구약의 보복율처럼 흑백논리로 변화 후 성숙해감에 따라 점점 더 너그럽고 상대론적인 황금률로 발전된다. 여기서부터는 동기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3] 발달 심리학자이자 에모리 대학교 신학자 제임스 파울러와
[4] 워싱턴대학교 심리학자 제인 뢰빙거는
피아제의 이론을 성인성장이론으로 발전시키는 데 일생을 바쳤다. 어린아이들이 성장해감에 따라 ‘수치심과 의무감, 심판’을 고집하는 기독교적 주장은 점차 ‘긍정과 용서, 감사’라는 영적 영역으로 뻗어나간다. 청소년기에는 지적인 확신과 젊음을 즐기지만, 노년에 이른 대법원 판사들은 노년과 회의를 감내한다. 종교적인 순교자는 많지만 영적인 순교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체성 확립은 성인발달의 첫 단계다. 종교 역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확고한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개인에게 위안이 되던 신은 점차 불가해하고 보편적인 고매한 권능이 되어간다.
다른 사람의 종교적, 영적 경험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되면 영성도 함께 발전할 것이다. 영성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동일시를 발전시킨다. 성숙을 통해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가치를 이해하고 경외할 수 있다. 기품있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하며, 대부분의 종교적 차이들은 바로 그 비본질적인 것들에서 생겨난다.
나는 통합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므로, 나는 통합의 과업 성취가 깊은영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곧 나의 가설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영성이나 신앙은 성공적인 노화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혜와 마찬가지로 노년과 영성의 연관성은 횡단연구의 인위적인 산물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기억의 산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의 모습을 떠올릴 때 그들의 마지막 모습, 즉 노년에 이른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영적인 지도자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에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우리는 터먼 여성과 하버드 졸업생들을 통해, 우울증과 종교적 참여 사이에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종교적 믿음이 매우 강한 30명과 지난 20년간 종교하고는 담을 쌓았던 127명을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영적, 종교적 믿음이 깊다고 해서 성공적인 노년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우울증에 걸린 비율이 네 배나 높았다. 윌리엄 제임스는 100년 전에 이미 심각한 우울증을 깊은 영성이나 정신적인 ‘재생 경험’과 연관시켰다.
[5] 과거 우울증을 앓았던 병력, 즉 50세 이전에 우울증 징후가 나타났거나, 친지들 중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있어나, 꾸준히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종교적인 신앙이 매우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 중에 사회적 유대관계가 풍부하거나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을 맞이한 이들은 드물었다. 그러나 종교가 나쁜 영향으 ㄹ끼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의사나 병원이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6] 듀크대학교에서는 노인 252명을 대상으로 25년에 걸쳐 장기 노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연구 결과, 종교적인 신앙이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와 정신과의사는 우울증이나 애정 결핍을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
[7], [8] 일반연구 조사에서도 종교화동 참여도가 높은 사람들 중에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드물었다.
[9], [10] 뿐만아니라, 병원 치료보다는 종교에 의지해 우울증을 치료할 경우, 회복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한가지 역설을 들어보자, 에릭슨은 기본적인 신뢰와 희망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과 관심에서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영성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에도 발전될 수 있다. 많은 종교에서 독신주의가 영적인 깊이를 더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독한 사람만이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각 집단을 살펴보더라도 어린 시절 희망과 사랑을 가져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종교적 믿음과 영성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2. CASE STUDY: 마사 조브 – 터먼 여성 집단
– 영성은 깊었으나 사회적 유대관계를 외면하다
마사 조브는 백내장 때문에 시력을 거의 잃다시피 했지만, 77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는 생계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불만이라고는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삶을 위엄있게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녀는 병을 앓고 있었지만 유머감각까지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마사 조브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예술가들이나 물리학자드러럼 사회적 유대관계를 적절하게 지속하지 않은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브는 몹시 외롭게 살았다.
면담을 마치고 떠나기 전, 그녀에게 수채화 작품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마사는 창고에서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을 가져왔다. 우리는 내퍼 계곡을 그린 풍경화를 감상하면서, 영성이 무척 깊었지만 사회적 유대관계를 끊고 살았던 반 고흐를 떠올렸다.
3. CASE STUDY: 테드 머튼(2)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종교 활동으로 사회적 지평을 넓혀 삶을 구원하다
테드 머튼 역시 사랑을 통해 마음의 병을 치유했다. 그러나 그는 두 번의 결혼, 두 번의 정신분석 요법, 주 명의 자녀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의탁함으로써 비로소 고통을 완전히 치유할 수 있었다.
그는 두 번째 이혼을 하고 아주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아내와 재산, 직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의 관계까지 끊어지고 말았다. 그때 그는 대학 졸업 뒤 처음으로 교회로 돌아갔다. 그는 교회에서 공동체를 위한 삶을 이끌어내고자 적극적으로 일했다. 그는 통합의 기초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폭넓은 사회적 지평을 이해해나갔다.
4. CASE STUDY: 빌 그레이엄 – 이너시티 집단
– 영적 치유로 짙은 우울과 무력감을 걷어내다
빌 그레이엄의 삶은 조브나 머튼의 삶보다 행복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세 살 반 된 아들의 양육을 포기했고, 이후로 한번도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주립병원에 수용된 뒤 그레이엄은 보스턴의 한 가정에 입양되어 열한 살까지 살았다. 양부모는 그를 상습적으로 때렸다. 양부모는 키우는 것보다는 생활보조금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어린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묻자, “남들에게 많이 베풀 줄 알게 되었고, 불행이 닥치더라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가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행동으로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그를 보살펴준적이 없었지만, 어른이 된 그레이엄은 늙은 아버지를 형편없는 주립병원에서 모셔와 함께 살았다. 또한 어머니까지 정기적으로 찾아 보살폈다.
그레이엄이 과거의 불행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바로 결혼이었다. 그는 비록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결혼생활만큼은 무척이나 행복했다.그는 종교적 믿음이 없었다. 그는 가족 안에서 고매한 권능을 발견했다. 아내가 죽고 그는 우울증에 걸렸다. 심각한 신체적 무능상태에 빠졌으며 삶에서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영성 치유과정에 참석하고 나서 오랫동안 앓던 위장병이 말끔하게 나았다.
68세에 빌 그레이엄은 영성이 매우 깊어져있었다. 그는 당시 은퇴한 상태였고, 둘째 부인과 함꼐 케이프코드에 살고 있었다. 그레이엄은 최근 특정 종교에 관계없이 다양한 예배에 참석하면서 조직화된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나가고 있다. 그는 내적 평화를 얻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레이엄은 신장염 때문에 장기적으로 신장투석을 받아야 했지만, 그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주 의연했다. 그레이엄은 성공적인 노화에 대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에는 가지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비로소 누리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발달과업 중 가장 마지막 단계인 통합의 정의로써 꽤나 훌륭하다.
끝으로 그에게 기적같은 일을 소개한다. 신장 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쇠퇴하게 마련인 생리적 기능이다. 그러다 이 책을다 쓴뒤 그레이엄은 “일년 넘게 신장투석 치료를 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5. 영성은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가?
이론적으로 본다면 나이가 들수록 영성이 더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11] 힌두교에서는 “노인이 되면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노년의 영적인 발달은 다룬 횡단 연구들 가운데
[12] 라스 톤스탐의 연구를 손꼽을 수 있다.
연구대상은 75세를 넘긴 덴마크 사람 912명이었는데, 연구 결과 대다수는 젊은 시절에 비해 훨씬 더 영성이 깊어졌다. 하지만 톤스탐의 연구는 횡단연구였으며 그 결과는 동시집단 효과 때문이었을 수 있다.
성인발달연구에서 종교적 신앙, 새로운 생각에 대한 열린 태도, 편견 없는 정치적 관점등은 만족스러운 노년을 맞이하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으 ㄹ끼치지 않았다. 이 장에서의 사람들은 영성이 깊은 대표적 인물들이었지만 성공적인 노화면에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이 점을 볼 때 성공적인 노화로 향하는 길은 세속적인 인간관계 속에 있다는 게 더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동시에 영성은 세속으로부터 고립된 상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영성은 두 사람 또는 그 이상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보다 더 위대한 힘을 지닌 존재가 있음을 인식하게 될 때,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넘치는 내적 삶에 귀 기울일 수 있을 때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