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_사람은 안팎으로 어떻게 성숙하는가
노화, 즉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개념이며, 사람마다 매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1. 쇠퇴 : 20세 이후부터 뇌세포가 일년에 수백만개씩 죽는다.
2. 자연의 흐름에 따른 변화 : 젊은 여성의 매혹적인 금발도 나이가 들면서 사랑스러운 백발로 바뀐다.
3. 죽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 : 떡갈나무나 특등급 와인 샤토 마고처럼
4. 위의 세가지 모두.
물론 정답은 위의 세가지 모두이다.
성인발달이론은 아직도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 현자를 기다리는 실정이다. 최선의 방법은, 현명한 예술가이자 인류학자이며 정신분석학자인 에릭 에릭슨의 이론에 입각해서 사회적 성숙을 설명하는 것이다.
1. 사회적 지평의 확장: 발달과업의 완수
의사와 부모들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린이들의 성격 발달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인의 발달은 여전히 수수께끼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인간의 발달은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아이가 일곱 살 될 때까지 나에게 맡겨보시오. 그러면 인간으로 만들어드리리다”라고 말한 것처럼 유아기에 완료되는 것도 아니고, 법적 성인 연령인 18세나 21세가 되면 멈추는 것도 아니다.
[1] 윌리엄 제임스가 “습관은 사회의 거대한 속도 조절 바퀴다. … 우리가 치르게 될 삶의 전쟁은 양육 과정이나 유년기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서른 살 즈음이 되면 석고처럼 성격이 굳어버려 좀처럼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썻다 하더라도, 남성들은 그의 말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2] 또한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서른 살에 접어들면서부터 여성들의 신체는 섬뜩할 정도로 경직되고 변화가 불가능하다.” 라고 환기시키더라도, 여성들은 그의 말에 귀담아 듣지 않는다.
[3]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들은 성인기의 삶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점성술 용어로 그 전형을 그려놓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발달을 과학적 연구의 주제로 다루는 것은 아주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4] 1842년, 아돌프 케틀레는 과학자 중에서는 최초로 “인간은, 이제까지 연구된 바 없었던 전혀 특수한 법칙들에 따라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 것이 아닐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 특수한 법칙들에 대한 연구는 수십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도 시작되었다.
[5] 1914년 말, 미국 노인의학의 아버지로 불렸던 이그나츠 나스케르가 그 주제에 대해 획기적인 연구서를 집필했지만, 그 책에 관심을 보이는 출판업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6] 1922년, 클라크대학교의 ㅊㅇ설자이자 ‘사춘기 adolescence’라는 용어를 대중화시켰던 스탠리 홀은 다행히 그의 책 <노년기>를 발행해 주겠다는 출판업자를 찾았지만, 실제 판매 부수는 매우 적었다.
1928년 카네기재단의 후원 아래 스탠퍼드대학교는 최초로 성인 심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에서 심리학자 해럴드 존스, 낸시 베일리, 진 맥팔래인의 주도하에 최초로 아동 성격 발달에 관한 전향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들이 세웠던 인간발달연구소는 에릭 에릭슨의 연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7] 같은 시기 버클리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샬럿 뷸러와 그의 제자인 엘스프랑켈–브룬스위크는 일반인들의 전기와 자서전 400편을 수집했다.
그들은 회고적 연구를 통해 성인 발달의 법칙을 연구해보려고 시도했다.
뷸러와 프랑켈–브룬스위크는 1600년대에서 1900년 사이에 실존했던 독일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성인 발달에 관해 연구했다.
[8] 독일 예술가들은 ‘성인의 발달’을 50세가 될 때까지 상승하다가 그 뒤로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는 하강하는 것으로 그렸다.
[9] 프랑켈–브룬스위크는 “45세 즈음부터 쇠퇴의 징후들이 보였다. 이때부터 제3의 시기, 즉 퇴보 성장기로 진입했다.” 라고 기록했다.
이 장의 첫 머리에 제시했던 네 가지 노화의 정의 중에서 그녀는 첫 번째 답을 선택했을 것이다.
[10]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성숙하고 또 성숙하여 / 다시 시간이 흐르고 흘러 쇠약해지고 또 쇠약해질 것이니” 라고 경고했던 셰익스피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프랑켈–브룬스위크는 비록 노화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자기 관점과 상충되는 기록을 남겨놓았다.
[11] 그녀는 “중년을 넘기면서 배우는 연출자가 되고 운동선수는 감독이 되었다. 일반적인 사교활동은 줄어들지만, 이 시기에 봉사활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라고 기록했다.
[12] 그려는 에릭 에릭슨이 이후 ‘폭넓은 사회적 지평’, ‘생산성’이라고 칭했던 것과 똑같은 성인 발달 유형을 설명하고 있다.
에릭 에릭슨은 1940년대 내내 인간발달연구소에서 연구를 했다.
[13] 몇 년 뒤 그는 “나는 10년에 걸쳐 건강한 아이들 50명의 성장과정을 연구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14] 그 뒤 50년 동안 에릭슨은 연구 대상자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에릭슨은 프로이트의 고찰을 대신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를 ‘기본적 신뢰 대 불신’ ‘자율성 대 수치심’ ‘주도성 대 죄책감’ ‘근면 대 열등감’이라는 좀 더 실제적인 용어로 바꾸었다.
[15] 에릭 에릭슨은 <유년기와 사회>라는 책을 출판함을써, 성인의 발달이 쇠퇴가 아니라 진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밝힌 최초의 사회과학자가 되었다.
성인들의 발달과정을 살펴본 에릭슨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사회적 지평이 확장된다고 믿었다. 성인 발달은 ‘정체성 대 정체성 혼란’ ‘친밀감 대 소외’ ‘생산성 대 정체’ ‘통합 대 절망’이라는 네 단계를 거쳤다.
[16] 사회적 지평의 확장을 일반화하기 위해 에릭슨은 인간발달연구소에서 성인의 인성 발달을 50년에 걸쳐 추적 조사했던 버클리대학교의 심리학자 노마 한의 연구 성과를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한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좀 더 외향적이고 자기 확신이 강해지며 다정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고 기록했다. 이 세가지 요소는 사교 능력이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인의 사회적 발달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사회적 지평은 점점 더 넓어진다. 연못에 돌멩이 하나를 던진다고 상상해보자.
[17] 잔물결들이 끝없이 생겨날 것이며, 먼저 생겨난 물결은 나중에 생겨난 물결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에워싸면서 넓게 퍼져갈 것이다. 성인의 발달도 그와 마찬가지다.
[18] 성인의 발달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에릭슨이 쓴 ‘단계’라는 용어보다 로버트 해빙허스트의 ‘발달과업’이라는 용어가 과학적으로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성인의 발달과업들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속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성인의 발달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우선 각 연구 대상자가 어떻게 특정 과업을 처음으로 수행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나는 여기서 여섯 가지 연속적 과업을 모델로 삼았다.
– 정체성: 청소년들은 성인기에 들어서기에 앞서 정체성을 확립해야한다. 정체성이란 부모로부터 독립된 자기만의생각, 가치, 견해, 열정, 취향 등을 가지는 것이다. 연구대상자들 중 50세까지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이들은, 그 나이가 되어서도 가정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거나 시설 기관에 의존했다. 그들은 중년이 되어서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고, 친구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도 없었다.
– 친밀감: 친밀감은 마치 자전거 타기처럼 일단 한번 몸에 익히기만 하면 그 뒤로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친밀감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매우 다른 얏앙으로 성취되는 듯 하지만 대부분의 온혈동물들이 그렇듯, 인간도 결국은 대를 잇기 위해 짝을 짓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양상을 띤다고 볼 수 있다.
– 직업적 안정: 이 과업을 이루려면 개인의 정체성 확립에 나아가 일의 세계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 생산성: 생산성은 다음 세대를 헌신적으로 지도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을 때 성취되는 과업이다.
[19] 연구에 따르면 30세에서 45세 사이에는 개인적인 성취에 대한 욕구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대신 공동체나 인간관계를 위한 욕구는 커지기 시작한다.
우리의 세 연구집단을 살펴보면, 생산성 과업을 훌륭하게 성취해 낸 사람이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70대에 이르러 삶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가능성이 세 배는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의미의 수호자: 다섯째 과업은 현명한 판사의 역할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의미의 수호자는 자기 아이들의 성장보다는 인류의 집단적 성과물, 즉 인류의 문화와 제도를 보호, 보존하는데 초점을 둔다. 생산적 성취도가 높은 개인은 직접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즉 정신적 조언자나 스승이 되어 다른 개인을 돌본다. 이와 달리 의미의 수호자는 과거의 문화적 성과를 대변하고,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단체나 조직, 모임을 이끈다.
– 통합: 이 과업은 인생의 위대한 과업들 중 맨 마지막에 성취된다.
[20]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오직 하나 뿐이며, 한번 태어나 한번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통합이다.
생산성의 미덕이 ‘보호’라면, 에릭슨이 제시한 통합의 미덕은 바로 ‘지혜’다.
[21] 에릭슨은 “마지막 기력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지혜는 남아 있다. 지혜 덕분에 우리가 죽음 앞에서 생명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다. 신체적, 정신적 기능은 쇠퇴해 가더라도, 지혜를 통해 꾸준히 통합을 경험하고 배우고 성취해 나갈 수 있다” 라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한 순간에 발달과업을 성취하는 이들도 있고, 스스로 과업의 성취를 가로막는 이들도 있다. 성인의 발달은 고정된 법칙대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22] 그러나 하버드, 이너시티, 터먼 여성 세 집단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23] 의미의 수호자가 되려면 반드시 생산성의 과업을 먼저 성취해야 한다는데에는 예외가 없었다.
물론 여성과 남성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24] 최근 미시간대학교, 밀스칼리지, 스미스칼리지에서 장기간에 걸쳐 여성 성장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30세에서 60세 사이에 생산성은 물론 권력과 권위에 대한 자신감이 증대되었다.
[25] 실제로 여성들이 전체 남성에 비해 더 나은 심신의 안녕을 누리고 있다는 ‘근거들’이 여러 저술에서 밝혀졌다.
삶의 어느 한 단계가 다른 단계보다 못하다거나 더 가치있다고 할 수 없다. 성인 발달은 나와 우리 이웃들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도다.
2. CASE STUDY: 애덤 카슨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삶의 여섯가지 연속 과제를 훌륭히 완수하다
[26] 30년전 나는 1969년에 면담을 나누었던 하버드 졸업생 애덤 카슨의 삶을 토대로 정체성, 친밀감, 직업적 안정, 생산서이라는 연속적 과업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 정체성: 애덤 카슨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카슨은 열아홉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 애덤 카슨은 가족들 몰래 오토바이를 구입했고 성관계도 경험했으며 특히 춤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어서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전문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 때문인지 정신과의사는 열아홉살의 그에 대해 “정신력이 강하고, 감성이 풍부하며, 활기차고 행복하고 낙관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청소년기에 카슨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정신과의사는 스물여덟살이 된 카슨 박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도량이 넓어 보이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 친밀감: 애덤 카슨은 스물두 살에 결혼했다. 카슨 박사는 미숙한 스물여섯 살짜리 ‘애송이’였던 그에게 꼭 어울리는 금욕적인 아내와 결혼했지만, 아내는 정체성 확립을 향해 나아가는 카슨의 앞길을 너무 이른 시기에 가로막아버렸다. 인류학자인 연구원은 스물아홉살이 된 카슨에 대해 “몸집은 커졌지만 가족에게 의존적이고 확신이 부족하며 정해진 유형을 좇는 데만 급급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서른여덟살 무렵 결혼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카슨은 자살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그 뒤로도 15년 동안 그 상태로 결혼생활을 지속했고, 다행히 그것만으로도 친말감의 최소 기준치는 충족될 수 있었다.
– 직업적 안정: 카슨 박사의 연구 성과 역시 부진하긴 했지만, 앞의 친밀감과 마찬가지로 직업적 안정의 경우에도 그럭저럭 최소 기준치를 충족시킬 만한 수준은 되었다. 그는 마침내 유명 의과대학에서 종신 재직권이 있는 부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카슨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신 재직권이라는 증표를 손에 넣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만족할 수 없었다.
– 생산성: 1967년 애덤 카슨을 처음만났을 때, 47세인 카슨은 스물아홉살 때의 기록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한때 소심하기 그지없었던 카슨이었지만 병원을 개업한 뒤에는 매력적인 의사로 탈바꿈했다. 결혼과 직업에서 중요한 변화를 거친 카슨 박사는 부모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더 이상 아버지의 훈계에 좌지우지되지 않았으며,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카슨의 관심은 눈 앞에 보이는 세계 그 이상으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 의미의 수호자: 65세가 된 카슨은 18년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다. 단순히 환자를 돌보는 것을 넘어 의학에 대한 관심이 한층 폭넓어졌으며, 의학의 전통과 윤리적 기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애덤 카슨은 마침내 의미의 수호자가 되어있었다. 70세가 되자 카슨은 은퇴한 뒤 의학윤리 정립을 위해 새로 건립된 헤이스팅스연구소 일을 시작했다.
– 통합: 애덤 카슨이 75세 되던 해에 다시 만났다. 그 무렵 카슨이 인생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 중 하나는 너무 쉽게 지쳐버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흥분과 기쁨의 감정까지 잦아드는 것은 아니다. 카슨의 정신세계는 성공회 교구위원보다는 일본의 신사사제나 라코타 인디언 부족의 샤먼들과 더 흡사했다. 카슨 박사는 이제 자기만의 자잘한 걱정거리들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 카슨이 지구의 운명을 염려한다고 해서 가까운 주변을 돌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카슨의 각 삶의 과업을 성취해 가는 과정 역시 여느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했다. 카슨은 다른 사람에게는 훌륭한 친구가 되어줄 수는 있어도, 친구가 되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발전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있는 것이다.
공자는 2천 5백년 전에 벌써 애덤 카슨 인생의 마지막 30년을 예측했다.
[27] “50세에는 천명을 알고, 60세에는 귀가 순해지고, 70세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음에는 품위있고 만족스러운 노년을 맞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인 세 가지 과업, 즉 생산성, 의미의 수호자, 통합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3. 욕망과 억압의 균형 잡기: 방어기제의 성숙
[28], [29] 알코올 중독을 치료할 때에도 이성적인 인지, 행동 요법보다는 ‘마음의 언어’에 관심을 기울이고 유머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종과 욕망을 균형있게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현명한 마부의 중용, 즉 열정과 이성의 조화를 되찾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심리적 균형은 자제력이나 단속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정신 조절 기제를 통해 획득된다.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베풀고, 도움을 청하고, 자아 발전을 위해 요김을 부려보면서 균형감 있게 살아갈 때 성공적으로 늙어갈 수 있다. 그러한 균형감은 에릭슨이 제시한 것처럼 순차적으로 삶의 과업을 이루어나가면서, 그리고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들을 도입해 나가면서 성취된다.
무의식적 방어기제들 중에는 투사, 수동 공격성, 분열, 행동화, 환상처럼 나쁜 영향을 끼치는 기제들도 있다. 사춘기나 인격장애 환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이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기제들은 때로 ‘죄악’의 형태에 이르기도 한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은 모두 단기적으로는 위안을 주지만, 결국 이전보다 한층 더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은 좀 더 바람직한 방어전략들로 발전된다. 승화, 유머, 이타주의, 억제가 그 예다. 이러한 성숙한 방어기제들은 바람직하고 도덕적이다. 건강한 70대 노인들은 20대 젊은이들보다 성숙한 기제들을 자주 이용한다. 그러나 성숙을 위해서는 정서의 발달과 수년에 걸친 경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뇌가 생물학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30], [31] 뇌의 연결경로, 특히 욕망과 이성을 통합하는 연결경로는 40세 이후로도 계속해서 성숙한다.
한편 승화(sublimation)를 통해 영혼의 연금술이 발휘된다. 성숙한 예술가들은 유년기의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성숙한 유머(humor)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고통이 어떤것인지 정확하게 볼 줄 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스스로 불안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이타주의(altruism)는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풂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억제(suppression) 또는 금욕(stoicism)은 이타주의나 승화, 유머와 같은 깊은 인간애와는 관련이 없다. 실제로 심리치료사들은 억제가 어떤 성과라기보다는 일종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효과적으로만 사용하면 억제는 균형을 잘 잡는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다. 억압(repression)과 억제는 둘 다 지금 당장 마음에서 욕망을 떨쳐내게 해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때가 무르익었을 때 욕망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그 중 억제 뿐이다.
4. CASE STUDY: 수잔 웰컴 – 터먼 여성 집단
– 쇳조각에서 금을 만들어낸 삶의 연금술사
웰컴은 처음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난한 미망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면담 뒤 웰컴은 나와 아내에게 노년에 대한 긍정적인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현명한 여인으로 바뀌어있었다. 면담이 시작되자 웰컴은 연구 대상자들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어머니를 둔 사람이 바로 자기일 거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웰컴의 어머니는 에릭슨이 말하는 유아기에 꼭 성취해야하는 세가지 발달과업, 즉 기본적 신뢰, 자율성, 주도성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딸을 가로막았다.
어린아이가 그런 갈등 상황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수잔 웰컴은 어린 시절 수동 공격성을 통해 어머니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했다. 어린 수잔은 스스로 좌절함으로써만 어머니를 이길 수 있었다. 수동 공격성은 자아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학대를 불러들이는 방어기제다.
20대에 웰컴에게는 중요한 세가지 사건이 있었고, 그 덕분에 반항심이 넘치는 사춘기의 수난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성숙한 배려와 인내를 몸에 익힐 수 있었다. 첫째, 웰컴은 닮고 싶은 훌륭한 조언자를 발견했다. 둘째, 그녀는 어머니에게 화는 내는 것이 죄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일 뿐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셋째,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40년 이상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이 세가지 사건은 웰컴을 성숙하게 만드는 가장 소중한 촉매제가 되었고, 마침내 웰컴은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담고, 사랑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안전하게 그 감정을 지켜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야영도 하고 항해에 나서기도 했다. 남편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웰컴은 날마다 남편을 위해 연극하듯 생생하고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었다. 연기자였던 웰컴은 옛 실력을 발휘해 가며 다양한 사투리를 흉내내곤 했다. 쇳조각이 금으로 바뀌었다.
44세에 수잔은 다시 간호사가 되었다. 자신을 학대하기 위해서가 아닌 인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세상에 돌려주고 싶어서였다. 47세에 다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 웰컴은 다른 여성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으며, 여성들이 저녁에 춤을 추면서 운동을 할 때 피아노를 연주해주곤 했다. 웰컴에게 피아노나 춤은 더 이상 억압의 상징이 아니라 생산성의 매개물이 되어있었다. 수잔은 여러 단계의 영적 발전을 거치면서 성숙에 이르렀다.
나는 웰컴의 인생을 통해 성숙한 70대 노인들도 여전히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진다면 성인들은 현실세계에서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영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5. CASE STUDY: 빌 로먼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음주와 미성숙한 방어기제가 삶을 폐허로 내몰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반드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성인들이 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지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인간의 성숙은 결국, 중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두뇌 발달에 달려 있다. 우리 연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두뇌 손상의 원인은 알코올 중독이나 심각한 우울증이다. 빌 로먼의 경우가 알코올 중독의 대표적인 예다.
빌 로먼은 불행하게 살아왔지만, 상류계급의 관습에 얽매여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했다. 로먼은 다른 사람이 자기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빌 로먼의 생활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1929년에 사업에 실패한 뒤 자살했지만, 로먼은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어머니 품안에서 성장했다. 그의 형도 연구 대상자였는데, 생산적이고 성공적인 성인으로 성숙했다. 그는 버지니아의 대저택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대학 시절에도 소박하고 침착했으며, 매력적이고 성숙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로먼에게는 또 다른 일면이 존재했고, 대학 시절 처음으로 그 모습이 드러났다. 사교생활을 즐겼던 로먼은 주말마다 술을 마셨고 술 때문에 사나흘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세상을 매우 초라한 곳으로 여긴적도 많았다.
2 30대에 로먼의 방어기제들은 비교적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50세 이후부터 사망 전까지 로먼의 방어기제들은 주로 투사와 수동 공격성이었다. 그와 달리 웰컴은 그 시기에 이미 그와 같은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을 극복한 상태였다. 1982년 면담 이후에도 로먼의 알코올 중독 증세는 계속 심각해졌다. 하지만 로먼은 자기 주치의에게 몇십년 동안 그 사실을 비밀로 묻어달라고 했다. 죽음에 이를 즈음까지도 로먼은 일주일에 40시간씩 일을 했다. 진짜 이유는 은퇴 뒤에 삶을 즐길 만한 그 무엇도 마련해 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로먼에게 노화는 쇠퇴를 의미할 뿐이었다. 돈은 성공적으로 노년을 맞이하는 것과 거의 연관이 없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은 불운한 노년에 매우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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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성숙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 방어기제 역시 생소한 개념이다.
[32], [33] 무의식적인 심리적 적응은 프로이트가 1894년에 처음으로 고안한 개념이다.
프로이트가 방어행위들을 방어기제라고 부른 것은 결코 병리학적인 성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방어행위들은 비록 부적응적 양상으로 나타나기는 하나, 궁극적으로는 적응을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초석이다.
[34] 적응 기제를 적용하는가, 아니면 부적응기제를 적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계급이나 아이큐, 교육 수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피부색이나 부모의 교육 수준과도 관련이 없다.
[35] 성생활이나 당구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차등이 없으며,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36], [37], [38] 투사나 ‘방종한 행동’과 같은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들이 이타주의나 승화로 성숙될 것이라는 개념은 불과 40년 전에 생겨난 매우 현대적인 개념이다.
[39] 일단 전향적 연구가 가능해지자, 중년 이후에도 계속 방어기제가 성숙될 수 있다는 것이 성인발달연구의 세 집단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다.
[40], [41], [42] 전 생애에 걸쳐 끊임 없이 방어기제가 성숙된다는 생각은 몇몇 다른 연구자도 확증한 바 있다.
[43] 정리하면, 성숙해질수록 이타심은 커지고 투사하는 일은 줄었다.
[44] 마침내 1940년 에릭슨이 연구했던 것과 똑같은 조건을 지닌 집단을 대상으로 60년간 추적 조사를 거친 결과, 남성과 여성의 정신건강은 실제로 노년으로 갈수록 더 좋아진다는 확실한 결론에 도달했다.(특히 버클리대학교의 인간발달연구소 집단에서 더 분명한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노년에 접어든 하버드 집단에서도 방어기제가 계속해서 성숙되는 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 25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는 사이 이타주의나 유머는 상당히 증가했다. 그러나 억압, 반동 형성, 미성수하고 부적응적인 방어기제들은 눈에 띄게 감소되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노화가 아니라 질병이 방어기제의 성숙을 방해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