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_어린 시절이 인생을 좌우하는가?
유년기는 두 가지 방식으로 노년에 영향을 끼친다. 첫째, 유년기에 아이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믿음, 자율성, 독창성을 키워나간다. 그 사건들은 아이들이 지닌 희망과 자아의식을 폭넓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유대로 확장시키며, 그것이 풍요로운 노년의 밑받침이 된다. 둘째, 유아기에 강하게 애착을가졌던 일들이 우연이나 비극적인 사건을 거치면서 잊혀졌다가 몇십 년이 지난 뒤 기억이 다시 환하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처럼 잃어버렸던 사랑을 되찾을 때 엄청난 치료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1. 한 사람의 유년기를 바라보는 방법
연구 대상자들의 유년기에 대한 평가는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해 몇가지 원칙에 따라 평가 작업을 진행했다. 첫째, 연구 대상자들의 유년기 환경 평가를 맡은 연구원들은 청소년기 이후 각 연구 대상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모하도록 했다.
[1] 둘째, 적어도 두명 이상의 신뢰할 만한 평가위원들이 각 연구 대상자들의 유년기를 평가했다. 그러고 나서 아동 정신과 의사들이 내린 평가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했다. (부록 D 참조)
셋째, 유년기에 대한 평가는 정신과 의사가 대학 재학중인 연구 대상자들과 나누었던 면담뿐 아니라, 각 연구 대상자의 부모와 나눈 면담까지도 근거 자료로 삼았다.
넷째, 이 장에서 언급하는 평가들은 1970년에서 1974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다만 역사적 특성을 상쇄하기 위해 또 다른 검증 과정을 도입했다.
어느 한가지 측면만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기 다른 다섯가지 항목을 바탕으로 평가작업을 진행했다.
1. 집안 분위기가 화목하고 안정적인가?
2. 어머니와의 관계가 기본적인 신뢰, 자율성, 주도성, 자부심을 성취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3.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4. 형제들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형제들끼리 서로 우애 있게 잘 지내는가?
5. 평가위원도 그런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가?
각 항목마다 아주 그렇다(5), 보통(3), 전혀 아니다(1)로 평가했으며 종합 점수는 최소 5점에서 최고 25점까지 나왔다. 상위 25퍼센트는 행복한 상태, 하위 25퍼센트는 불행한 상태 즉,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2. CASE STUDY: 올리버 홈스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따뜻한 유년기를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주다
행복한 유년의 경험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있다. 가장 안온한 유년기를 보낸 올리버 홈스 판사의 가정을 예로 들 수 있다. 올리버 홈스의 유년기 평가 점수는 25점 만점에 23점이었다.
홈스는 부모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자기 아이를 바라보듯이 사람들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애썻다. 자녀들로부터 기쁨을 얻었던 홈스 판사와 부인은 면담원인 나까지도 편안하게 해주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하면 단조롭고 지루할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홈스 판사가 가진 또 하나의 능력은 전혀 싫증내는 일 없이 안정감을 찾고 늘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만족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려면 다음 세대로부터 배울 줄 알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묻자 나중에 주디에게는 쾌활함을, 자넷에게서는 창조성을, 마크로부터는 이타심을 배웠다고 명쾌하게 요약해 주었다.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며 자라난 홈스는, 자신도 역시 자녀들에게 내리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3. 유년기의 행복이 노년기에 끼치는 영향
유년기가 성인기의 행복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2], [3] 그러나 최근의 과학적 관점들에 따르면 그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올리버 홈스 같은 인물은 행복한 유년을 거쳐 성공적인 노년에 이르렀지만, 앤서니 피렐리 같은 경우는 전혀 달랐다.
만족스러운 노년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수입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연구의 세 집단들을 살펴본 결과, 정서적인 풍요로움이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너시티 출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정신건강과 성숙한 방어기제, 온정이 넘치는 친구관계, 존경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어머니 등의 요소들은 미래의 고소득을 예측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반대로 아버지가 생활보호대상자인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에 자랐다는 것만으로는 미래의 소득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4] 요약하면 긍정적인 유년기가 부정적인 유년기보다 한 사람의 미래를 훨씬 더 강력하게 예견할 수 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면, 유년기의 불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덜 중요해진다.
[5] 하버드 졸업생 집단이 중년에 이르자, 유년기의 환경적 요인들이 실제로 신체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유년기와 신체건강 사이에 나타나는 연관성이 끝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75세에는 유년기와 신체건강 사이의 뚜렷한 관련성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으며, 80세에 이르자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던 하버드 연구 대상자 20명 중 4명이 가장 훌륭하게 노년에 이른 이들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연구 결과도 있다. 첫째,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정신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둘째, 그들은 놀이를 통해 인생을 즐기는 데 익숙하지 않다. 셋째, 그들은 자기감정은 물론 세상을 신뢰하지 않는다. 넷째, 평생 동안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본 데이터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남
[6] 중년에 이른 이들에게 ‘예/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을 많이 던졌다.
그 질문들을 통해 30년뒤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에 이를 것인지, 아니면 불행하고 병약한 노년에 이를 것인지 구분할 수 있었고, 30년 전에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는지,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는지도 가려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50세에 제시했던 여덟가지 질문은 과거와 미래의 연관성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다음 네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할 경우, 그 사람은 분명 자기 감정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의미이다.
– 다른 사람들은 내가 성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 성생활이 없는 결혼이 나에게 더 잘 맞는다.
– 성 적응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 감정이 강렬하게 일어야 하는 상황에서 무덤덤해질 때가 있다.
다음 나머지 네 질문에 예라고 답할 경우 그 사람은 자기 욕구나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고 있다는 의미이다.
– 나의 심각한 감정이 파괴적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 사람들을 질리게 할까 봐 두려워질 때가 종종 있다.
–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는 일이 흔히 있다.
–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부담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하버드 졸업생들 중에 이 여덟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한 비율은 30년전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이들보다 세 배는 더 많았다. 30년 뒤 불행한 노년에 이른 이들과 행복한 노년에 이른 이들을 비교해 보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부록 E 참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을까?
[7] 공격성을 통제하는 것은 성적인 친밀감을 획득하는 것만큼이나 섬세한 자아의 균형감각이 필요한 행동으로서, 미래에 성인으로서 이루어야 할 주요 과업, 즉 친밀감, 직업적 안정, 생산성에 영향을 끼친다.
4. 사실 또는 억측: 우울증 때문에 병이 생길까?
뇌가 면역체계에 영향으 ㄹ끼친다는 믿음, 다시 말해 어린 시절 허약하다고 느끼며 자라날 경우, 실제로 병약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흥미ᅟᅩᆸ다.
노년의 신체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는 우울증 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 흡연, 자기 방치, 만성질환, 불행한 유년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진범은 어느 것이고 순수한 방관자 또는 희생자는 어느 것인가?
[8] 첫째,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읜 성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본 결과, 고아로 성장한다는 것 자체는 그다지 오랫동안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단 부로를 죽음으로 몰았던 유전병을 물려받는 경우는 예외였다.
[9] 둘째, 우울증이 암과 연관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울증이 암의 주요 원인이라는 근거는 미약했다.
셋째, 몸이 아프면서 마음도 우울한 사람들은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크고, 그만큼 우울증과 질병 사이의 연관성은 실제보다 과장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몸이 아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신이 신체건강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과 신체적 질병의 밀접한 관련성을 증명하는 탁월한 연구 결과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우울증 자체보다는 우울증을 동한하는 지나친 흡연이나 자기 방치가 신체적 병을 유발하는 주범이기 때문에 우울증이 노년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직접적 원인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싶을 따름이다.
5. 과거와 인생의 재구성
사람들은 누구나 현재의 삶을 좀 더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지나온 나날을 재구성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과거는 허구이므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과거를 망각하고 산다면, 현재의 삶이 더 수월해지기는 한다.
67세가 된 이너시티 연구 대상자에게 부모로부터 어떻게 지도 받았는지 물었다. 그가 말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였으나 실제 기록을 살펴보면 아동학대방지협회의 보호를 받은 적이 있는 등 전혀 다른 기록이었음.
6. 되찾은 사랑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결핍(privation)과 박탈감(deprivation)은 엄연히 다르다. 결핍은 한번도 사랑을 베풀거나 받아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박탈감은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다는 의미다. 박탈감 때문에 고통을 겪을 수는 있지만, 별이라고 볼 수는 없다.
[10] 톨스토이의 말처럼,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크게 슬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슬픔을 치유하는 것도 역시 사랑이다.”
노년의 삶은 이제까지 사랑해 온 모든 이들을 합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생기 후반기에 이루어야 할 과업 중 하나는, 인생 전반에 사랑했던 모든 이들을 다시 찾아내어 그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는 것은 곧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방식이 된다.
7. CASE STUDY: 마사 미드 – 터먼 여성 집단
– 잊었던 사랑을 찾아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다
미드는 사회사업가지자 심리치료사로서 내면적인 삶에 관심이 많았기에 자기 자신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미드는 과거에 심각하고 만성적인 심리적 고통을 겪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그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마사 미드는 몇 시간씩 심리치료를 받곤 했다. 심리치료를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을 겁쟁이 생쥐로 만들었던 어머니를 책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로를 때 병적인 공포증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자기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방법만이 공포증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미드는 어머니가 자기를 겁쟁이로 만들었던 것에 화를 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니에 대해 연민이 깊었다. 미드는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 두 여자를 떠올렸다. 그들은 어머니가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미드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수록 어머니를 사라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더욱 더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미드가 그토록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마침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숨김없이 인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8. CASE STUDY: 테드 머튼(1)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과거의 기억을 발굴하여 미래에 투자하다
머튼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관심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
머튼을 처음 맡았던 아동정신과 의사에게 그의 유년기를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머튼이 매우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평가했지만 한 가지 예외요소가 있다고 덧붙였다. 즉 다섯 살까지 유모와 매우 가깝게 지냈다는 것이다. 유모와의 관계가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그 기억을 통해 조금이나마 유년기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다.
머튼은 그처럼 ‘차가운 빈 유리병’에 희망과 힘을 불어넣기 위해 계속해서 과거를 떠올리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머튼은 과거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떠올림으로써 일찍이 가져보지 못했던 가족을 다시 창조해내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을 발굴해 내어 미래에 투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