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_생산성: 만족스러운 인생의 열쇠
세 집단을 통해 살펴본 결과, 노년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가장 강력하게 시사해 주는 것은 에릭슨의 생산성 과업을 달성했는지 여부였다.
[1] 놀랍게도 터먼 여성 집단의 경우, 친밀감보다 생산성 과업을 성취한 여성들이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생산성 과업을 성취한 사람들은 70세 이후에도 여전히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성이 단지 결혼생활과 연관되는 것만은 아니다. 생산성은 만족스러운 노년을 뒷받침해주는 버팀목이나 마찬가지다.
생산겅 과업은 다음 세대를 돌보는 것까지 포함한다. 생산적인 부모는 모든 이들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터먼 연구의 남성 연구 대상자들은 대부분 성공을 거둔 데 반해, 여성 연구 대상자들은 어려서부터 개인적 욕심은 접어두고 부모와 남편을 위해 희생했다. 그 결과 그들의 자아는 있는 대로 위축되고 말았다.
[2] 나는 얼마 전에 수술을 받으려고 입원해 있는 남녀 환자들을 대상으로 병원에 오게 된 심리적 원인을 조사한 적이 있다.
여성 환자들의 경우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쳐 병원을 찾은 여성은 아무도 없었지만 병든 부모를 돌보느라 지쳐서 온 여성은 몇 명 있었다.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인가 보다.
예전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성이라고 한다면, 생산성은 예전에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세상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기 전에 생산성을 성취해버린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아를 확고하게 형성한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 스스로를 버릴 수도 있게 된다.
1. CASE STUDY: 프레드릭 호프 – 이너시티 집단
– 지능은 낮아도 훌륭한 인격으로 삶을 완주하다
[3] 존 코토르는 저서 <자아를 뛰어넘어 사는 법>에서 생산성 과업이란 “자아를 지탱해 줄 삶의 형태와 일에 자신의 능력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요약했다.
1940년 호프의 기록을 살펴본 바로는, 그는 유년 시절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형제들은 범법행위를 저질렀거나 알코올 중독이거나 정신박약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정성스럽게 프레드릭 호프를 보살펴주었다.
그는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으려 자라났고, 그 덕분에 삶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65세에는 친구, 가족, 일, 취미, 봉사활동, 종교활동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만족스럽게 살았다.
2. CASE STUDY: 그웬돌린 하비샴 – 터민 여성 집단
– 성실한 딸이었으나 평생 행복을 모르고 산 여인
터민 여성 집단의 그웬돌린 하비샴의 가족 구성은 프레드릭 호프와는 전혀 달랐다.
하비샴은 첫 인상과는 달리 면담 내내 텅 빈 요새에서 울려나오는 것 같은 진부한 대답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스르르 우리를 빠져나갔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 그녀와 가까워지기란 힘들어보였다.
가정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는지 묻자, 하비샴은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하비샴의 공허한 삶의 면면들이 면담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비샴은 다른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는 일도 없이 평생을 성실한 딸로 살아왔을 뿐이다.
3. CASE STUDY: 빌 디마지오 – 이너시티 집단
– 출신의 한계를 딛고 생산적인 존재로 거듭나다
그의 가정은 최하층에 속했다. 그러나 쉰 살이 된 빌 디마지오는 매력적이로 책인감이 넘치며 헌신적인 남자였다. 트럭 운전수였던 프레드릭 호프와 마찬가지로, 목수 디마지오는 자기 일을 사랑했다.
디마지오 부부는 서로 위안이 되어주려고 노력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결혼 생활을 만족스럽게 오래 지속하는 필수 요건 네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생산성, 헌신, 인내, 유머감각일 것이다.
디마지오를 만났던 면담원은 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디마지오는 주위 사람들에게 건강하게 관심을 쏟고 있으며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았으나 자기 원칙에 대해서만은 타협할 줄 몰랐다. 전체적으로 보 ㄹ때, 그는 매우 성숙하고 흥미로운 남성이었다.” 평가자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디마지오가 생산성 과업을 이루었다는데 동의했다.
스탠퍼드, 하버드 대학을 나와야만 그리고 아이큐가 높아야만 공동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생산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가정과 직업 생활의 만족을 뒤로 미룰 필요도 없다.
4. CASE STUDY: 프레드 칩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관계와 유대 속에서 인생의 항해술을 배우다
프레드 칩과 면담을 나누고 난 뒤, 나는 그의 전 생에에 생산성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78세가 되었지만 아직 의미의 수호자가 되지 못했다고 안달하는 일도 없었다. 그는 생산적인 존재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프레드 칩은 매우 진지했고 농담이라고는 몰랐다. 가십거리나 한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언제나 성인군자 다운 면모가 풍겼다. 따뜻한 품성으로 믿을을 주었고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했다. 그러나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분석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칩은 자기 성찰에만 빠져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삶은 오히려 사람들과의 관계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부부사이는 칩의 말대로 삶의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부부 금슬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가족들에 대한 칩의 헌신과 사랑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칩은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거예요”라고 말했다. 칩이 생산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12대에 걸쳐 한 농장을 한결같이 정성스레 가꿀 줄 알았던 가정에서 자라온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잔 웰컴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이웃들과 터놓고 지내온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5. 당신은 자녀들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4] 에릭 에릭슨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의존한다는 사실만 강조되다 보니, 나이 든 세대들이 젊은 세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간과될 때가 많다.”라고 한 바 있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65세가 넘은 하버드 졸업생과 터먼 여성들에게 “자녀들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러나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었는가를 강조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중에는 생산성 과업을 성취하거나 성공적인 노년을 맞은 이들을 찾아보기가 드물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다음 세대로부터 배운 것이 많은 연구 대상자일수록 자기 자신을 책임질 줄 알았다.
생산적 성취도가 비교적 낮은 연구 대상자들은 위 질문에 대부분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생산성 과업을 성취하지 못한 연구 대상자들은 자녀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했다.
생산적인 삶을 살아온 연구 대상자들은 대부분 우리가 제시하는 질문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했다. 그들은 자녀들을 돌보고 자녀들에게서 배우면서 진정한 상호작용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6. CASE STUDY: 애너 러브 – 터먼 여성 집단
– 척박한 현실의 땅에서 사랑의 씨앗을 뿌리다
애너 러브는
[5] 앤 머로 린드버그가 남긴 “사랑의 씨앗은 영원히 거듭해서 뿌려져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여성이다.
그녀는 몸만 성치 않을 뿐 삶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간진하고 있었다.
애너 러브의 삶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애너 러브는 누군다를 돌보는 일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일로 여겼다.
애너 러브는 언제나 긍정적인 측면을 보려고 애썻으며 자만심 같은 것은 없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당한 일을 겪을 때면 언제는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울 줄 알았다.
애너 러브는 늘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 다음에 출근했다. … 러브의 가족을 봐도 사랑이 내리사랑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애너 러브도 그녀의 아버지처럼 대학원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러브는 자녀들만큼은 끝까지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겠다고 결심했다.
자녀들에게 배운 점이있다면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애너 러브는 드디어 말할 기회가 와서 기쁘다는 긋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 우리 아이들은 하나 같이 제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소중한 존재들이랍니다.
영감이란 결국 다른 사람을 우리가 숨쉬는 공기로, 우리의 직감으로, 그리고 우리의 마음으로 깊숙이 받아들이는 방법을 나타내는 하나의 메타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