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_과거와 미래를 잇는 의미의 수호자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개성이 점점 더 뚜렷해진다. 사람들이 노년으로 갈수록 완고해지는 것은, 창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선택을 발전시켜 온 결과다. 소설가인 메이 사튼은 70세에 “요즘 나는 어느 때보다 나다워졌다”고 했다.
[1] 노년학자인 캐럴 리프는 “개성은 삶의 다른 분야에서 생겨난 상실감을 보충해주는 역영이라고 고찰할 수 있다” 라고 썻다
[2] 윌리점 에임스는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완고함이라는 종착점에 이르게 마련이다”라고 거침없게 말했다.
그렇다면 자기의 확고한 인격을 발전시키는 것 외에 60, 70대 노인들이 사회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나이가 들수록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차이는 줄어든다.
여성들의 가슴은 평평해지고 목소리가 굵어지며 얼굴 선도 날카워로워진다.
[3] 남성의 가슴은 점차 부풀어오르고 얼굴선은 부드러워지며 한창때 왕성했던 테스토스테론이 서서히 줄어든다.
[4] 남성적인 강인함을 유지하기 위해 열정을 아끼지 않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차조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남성 작가는 늙은 허버드 아주머니로 변하고, 여성 작가들은 잔 다르크가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5] 그러나 통념과 달리 전향적 연구 결과, 폐경기가 되었다고 해서 여성들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6] 그런데도 어느 전향적 연구에서는, 27세 여성들이 목적 지향성, 조직력, 실천력, 자신감, 현실성 등 여러 행동 평가에서 남편들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은 데 반해, 50세에서 60세 사이 여성들은 남편들보다 오히려 조금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 인류학자 데이비드 거트만은 서로 다른 26개 문화권을 비교 분석한 뒤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987년).
[7] “14개 문화권에서는 노년으로 갈수록 여성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갔고, 12개 문화권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남성의 주도권이 증가된 경우는 어느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노년의 역할은 남녀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하다. 생산성 과업은 오직 성인만이 해낼 수 있다.
[8] 칼 융은 “인류에게 수명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면, 인간은 분명 70세나 80세까지 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후반기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틀림없으며, 단순히 인생의 초반기에 덤으로 부여받은 보잘 것 없는 세월이 아니다.”라고 고찰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발리 섬에서 노인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9] 노인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마을 회의를 주관하고 병자를 돌보며 옛이라야기를 들려주고 젊은이들에게 시와 예술을 가르친다. 종교의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나이가 들수록 성의 구분은 사라미즈모, 노인들은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모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젊은사람들은 모든 문제에 대해 노인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나이든 갈까마귀나 침팬지들도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젊은 갈까마귀나 침팬지가 보내는 경고 신호는 무시되기 일쑤지만, 연장자가 보낸 경고 신호는 무리 사이에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생산성 과업의 미덕은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데 있다. 한 가지 단점은 어느 한 사람에게 특별히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반대로 의미의 수호자라는 과업에는 ‘정의’라는 덕목이 내재되어 있다. 정의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없고 가능한 주관을 배재하는 것이다.
생산성 과업을 마치고 의미의 수호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경험히 풍부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체적으로 허약해진 탓도 있다.
생산성은 다른 측면에서도 의미의 수호자와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심판관보다는 생산적인 존재를 더 사랑하게 마련이다.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이끌고 관리해 주는 집단의 지도자나 팀 주장을 사랑하고 또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심판들은 향해서는 “갈아치워!”하고 소리를 높인다. 그러므로 대중의 환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생산성에서 의미의 수호자로 옮아가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노인들은 비록 젊을 때보다 훨씬 더 완고해졌을지는 모르나,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서 만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정확하게 이해한다.
[10] 에릭슨은 “중년을 훌쩍 넘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동년배들이 젊은 시절보다 훨씬 더 관대하고 참을성 많고 개방적이고 이해심 풍부하고 온정적으로 변했으며, 불평불만도 훨씬 줄었다고 묘사한다.”라고 썼다.
그러나 내가 생산성의 활동적인 측면과 의미의 수호자에게서 보이는 차분한 밀면을 너무 단순하게만 구분한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친밀감과 직업적 안정이라는 과업이 나란히 함께 발전되듯이, 생산성과 의미의 수호자라는 과업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구현하는가, 아니면 의미의 수호자가 되는가 하는 두 가지 과업 사이의 구분은 초록과 파랑의 경계만큼이나 모호하다.
1. CASE STUDY: 피터 와이즈먼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과거의 기억을 후대에 물려주는 가치의 수호자
피터 오이즈먼은 과거를 전수하는 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중요한 임무임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와이즈먼은 여든 살이 되는게 좋았다. 그는 74세에 재혼하면서 자우너해서 맡아왔던 직위들을 모두 내놓았다. 와이즈먼은 자신의 추억을 글로 썼지만 ‘어느 출판사도 개인의 추억을 소재로 한 신참 작가의 원고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이 직접 책으로 펴냈다. 작가가 된 느낌이 어땟는지 묻자,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으며 굉장히 만족스러웠다고 대답했다. 나이든 사람들만이 다음 세대에게 과거를 생생하게 전해 줄 수 있다.
성인 발달의 보편성을 다룬 우리 연구의 결과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있을 것이다. 성인이 발달하는데 사회적 낙인이나 편견은 알츠하이머병이나 알코올 중독, 우울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만큼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 걸까? 결론은 걸림돌이 된다! 나쁜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낙인 역시 개인의 삶을 타락시키고 오염시키는 독소로 작용한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좋은 유전자의 효력도 파괴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비바람에 쓰러진 풀도 당장 그 결과가 눈 앞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이면에는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설적인 성장의 잠재력이 내재해 있다.
2. CASE STUDY: 마리아 – 터먼 여성 집단
– 사회적 혜택의 불모지에서 성숙의 힘을 발견하다
마리아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고, 그마나 그 아버지마저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탓에 진짜 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라틴계 여성이었다. 마리아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어머니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는 늘 주변 사람들의 편견이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은 마리아의 영어 어휘력이 평균 이하라고 평가했지만, 실제로는 전체 미국 초등학생 중에서 최상위 1퍼센트에 속했다. 이러한 상횡이 벌어진데는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힌 교사의 책임도 있지만, 마리아에게도 책임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마리아는 터먼 연구자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제시된 도서 목록을 다 읽어보았다고 제주장했다. 터먼 연구원을이 보기에 가상의 도서명이 포함되었기에 마리아는 한낱 거짓말쟁이에 지나지 않았다. 터면 연구원들 역시 마리아의 편에 서서 마리아를 평가하지는 못했다.
마리아는 죽을 때까지도 무용가, 시인, 의사가 되고 싶은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건만 되었다면 세 가지 꿈 모두를 이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약점을 지닌 채 자라난 마리아에게 친밀감, 직업적 안정, 생산성과 같은 발달과업의 성취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리아는 비록 사회적 혜택이라고는 한 번도 누리지 못했지만 성숙의 힘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수호자가 될 수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일년 전, 마리아의 다양한 재능이 마침내 인정을 받았다. 69세에 샌디에이고 사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된 것이다. 그녀는 마침에 여성 지도자가 되었으며 존경받는 연장자의 자리에 올랐다.
3. CASE STUDY: 마크 스톤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의미의 수호자로 충실하게 산 건전한 보수주의자
완고함과 건정한 보수주의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마크 스톤은 자기 나이에 비해 조숙한 편이었다.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 의미의 수호자가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75세에 대학 당국으로부터 보조금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과학의 하위 분야에 무보수로 헌심함으로써 의미의 수호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스톤은 뛰어난 학생이었지만 로르샤흐 잉크 반점 검사에서는 ‘평균 이하’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스톤은 ‘그저 단순한 잉크 반점들’에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며 로르샤흐 검사를 폄하하기도 했다. 이후 40년뒤 로르샤흐 검사 결과가 종종 아주 흥미롭기는 하지만 인간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스톤의 성경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던 침착성이나 금욕주의는 미래의 성공을 예견하는 강력한 지표로 판명되었다.
스톤은 교수생활을 하면서 생산적인 성과들을 꾸준히 내왔다. 그는 박사 과정을 마친 연구자들과 함꼐 열심히 연구했고, 그들과 공동 논문을 써왔나. 그는 자기가 언제 물어나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만나본 연구 대상자들 중에 스톤 교수처럼 성공적인 노화의 기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인물은 드물었다. 마크는 꾸준히 새 논문을 썼으며, 그 논문들은 계속해서 물리학 잡지에 실리고 있었다.
4. 의미의 수호자들은 모두 완고한 공화주의자인가?
낙관주의자이자 정신분석 전문의이며 민주당 지지자인 나는 편견을 가지고 연구 대상자들을 대해 온 면이 없지 않았다. 연구 대상자들이 나의 편견의 정당성을 입증해줄 때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연구 대상자들은 이타주의가 편집증보다 더 적응적인 방어기제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종단 연구의 진정한 가치 중 하나는 편견과 이혹을 지양한다는데 있다. 나의 편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다정다감과는 인연이 없어 보이는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만큼 성공적인 노년을 맞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간디가 아버지로서는 매우 형편없는 사람이었던 반면 록펠러는 분별있고 괜찮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하버드 집단의 경우 자유주의자들은 새로운 사고를 훨씬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였고, 젊은이들의 주장이나 취향도 수긍하는 편이었다. 그들은 창조성을 표현하거나, 방어기제로 승화를 이용하거나, 어머니의 교육 수준이 높거나, 본인이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재산을 많이 모았거나 운동경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었으며, 실제 생활에서는 물론 필답검사에서도 새로운 것에 대해 훨씬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차이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11] 1944년, 25가지 인격적 특성 또는 개성으로 사람들을 분류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중 정신건강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은 실용적, 실천적인 성격 두 가지 뿐이었다. 그러나 이 두가지 틍성은 70대 민주당 지지자들보다는 75세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훨씬 더 일반적으로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정신건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하버드학생을 떠올릴 때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들은 75세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훨씬 더 많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다섯가지 특성, 즉 내성적, 창조–직관적, 문화적, 관념적인 성격과 환경 변화에 민감한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연구 대상자들 대부분은 스스로가 정치적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연구 대상자들 대부분은 50년 동안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기보다는 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 진영에 기울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