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의 조건
호기심(好奇心; curiosity)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곧 호기심이다(유의어로는 흥미, 관심 등이 있음). 그러면 사람들은 언제 새롭고 신기하다고 느끼는가? 또 언제 모르는 것을 더 알고 싶어지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무엇인가에 대해 모른다고 느낄 때 새롭고 신기하다고 느끼고, 더 알고 싶어진다’고 답할 수 있다. 즉 호기심의 본질을 ‘모름’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도 호기심의 원천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언제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아직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질문에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라는 답하는 것은 ‘나는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순환논리의 오류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무지’의 상태, 혹은 백치상태는 호기심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 어떤 상태가 되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궁금증이 생길까? 아무것도 모르는데, 머릿속이 새하얀데 뭔가가 떠오르겠는가? 돌려서 말하지 않겠다. 뭔가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 즉 호기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뭔가 좀 알고 있어야 한다. 어려운 말로 ‘호기심의 원천은 정보의 간극을 메우려는 욕구’에서 나온다. 내 머릿속에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래서 한 정보와 다른 정보 사이의 거리(정보의 간극)을 인지할 수 없다면, 호기심도 없다[1].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January 11, 1842 – August 26, 1910)도 그의 저서 《심리학의 원리》에서 “구체적인 지적 호기심과 가장 밀접한 과학적 호기심은 음악과 관련된 뇌 부위가 불협화음에 반응하듯이 지식의 비일관성 혹은 간극에 기인한다”고 말했다[2]. 다시 말해 호기심은 서로 다른 범주라고 알려진 정보를 하나로 연결시키고 싶을 때, 상반되는 주장 사이의 거리를 좁히거나 그 주장을 연결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고 싶을 때,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적인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 싶을 때 발생한다.
정보간극이론(지식간극이론이라고도 부름, Information/Knowledge gap theory)은 이러한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1, 3]. 이 이론에 따르면, 지식의 간극은 일종의 지적 박탈감을 발생시키고 사람들은 이 간극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정보탐색(Information seeking)을 시작한다. 이처럼 호기심은 지식(정보)의 간극에 주의를 기울일 때 생긴다. 정보간극이론은 무지(無知)가 호기심의 원천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좀 알고 있을 때 호기심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무엇인가 좀 알게 되면,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게 되는데, 그 박탈감을 채우기 위해 호기심이 발생하고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보간극이론은 호기심을 가로 막는 거대한 벽이 바로 무지(無知)라고 말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즉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가 호기심을 막는 궁극적인 장벽이다. 반면 공부를 하여 뭘 모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면, 여기서 호기심이 발생되고, 자발적인 지적 탐구가 시작된다. 지금 질문이 없는가? 뭔가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할 의지가 없는가? 공부가 재미없는가?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느껴지는가? 아직 공부를 충분히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통해 뭔가 질문이 생기고, 흥미가 생긴 상태, 즉 호기심이 충만해진 상태는 행복과도 연관된다. 긍정 정서를 측정하는 문항 중 하나가 바로 뭔가에 호기심을 느끼는 상태(interested)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3]. 또 독서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느끼는 행복보다 높은 수준의 행복을 주는 활동일 뿐 아니라[4], 삶에 꼭 필요한 자원인 재미(Pleasure)와 의미(Meaning)를 동시에 주는 활동인데[5], 이는 독서가 호기심을 유발하고, 충족시키는 과정을 끊임없이 제공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배우고 또 배우니 아는 것도 늘어가지만, 사실 모르는 것이 더 늘어난다. 그래서 계속 배우게 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Socrates; c.470 – 399 BC)같이 뛰어난 지혜자도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I know that I know nothing).”[6] 공부를 안 하면 다 안 것 같다. 혹시 책을 읽을수록 아는 것이 많아져서 더 이상 읽을 게 없어 질까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걱정하지 말라. 책을 읽을수록 읽을 책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나중에는 읽을 책의 목록이 너무 많아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알면 궁금해진다.
[1] Loewenstein, G. (1994). The psychology of curiosity: A review and reinterpretation. Psychological Bulletin, 116(1), 75-98.
[2] James, W. (1890).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Vol. 1. NY, US: Henry Holt and Company.
James, W. (1890).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Vol. 2. NY, US: Henry Holt and Company.
James, W. (1890).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Vol. 3. NY, US: Henry Holt and Company.
[3] Gottlieb, J., Oudeyer, P. Y., Lopes, M., & Baranes, A. (2013). Information-seeking, curiosity, and attention: computational and neural mechanisms.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7(11), 585-593.
Litman, J. (2005). Curiosity and the pleasures of learning: Wanting and liking new information. Cognition & Emotion, 19(6), 793-814.
[4] Watson, D., Clark, L. A., & Tellegen, A. (1988). Development and validation of brief measures of positive and negative affect: The PANAS scal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4(6), 1063-1070.
[5] Killingsworth, M. A., & Gilbert, D. T. (2010). A wandering mind is an unhappy mind. Science, 330(6006), 932-932.
[6] Choi, J., Catapano, R., & Choi, I. (2017). Taking stock of happiness and meaning in everyday life: An experience sampling approach.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8(6), 641-651.
[7] Plato. Apology. 21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