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일과를 마치고 10-20분의 꿀 같은 자유시간이 생기면 아이들과 으레 하던 게임이 있다. 이름하여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아이들이 수건돌리기 하듯 동그랗게 둘러 앉아있으면 선발된 술래는 한 친구를 지목하여 이웃을 사랑하냐고 묻고, 그렇다고 하면 어떤 이웃을 사랑하냐고 또 묻는다. 예를 들어 “안경 쓴 친구요”라고 말하면 (서 있던) 술래를 포함하여 안경 쓴 친구들은 재빨리 일어나 자리를 바꿔 앉아야 하는 게임이다. 술래를 포함했기 때문에 누군가는 또다시 서 있을 수 밖에 없고, 이 친구는 다시 술래가 되어 게임을 이어간다. 이 게임은ice breaking, 친목 도모 등 여러 목적으로 활용이 된다. 하지만 내가 여러 활동 중 이 게임에 더 많은 애정을 가졌던 이유는 “나”에게만 집중 되어있던 시간에서 벗어나 “이웃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 대상이 “안경 쓴 사람”일지 언정 말이다.
“나누면 행복해집니다” 라는 다소 식상해진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겠지만, 식상해졌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식상해져서 아쉬울 만큼 연구에서 보고하는 나눔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한다. 인간은 극도로 친사회적 종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영장류와 비교할 때, 인간은 가족, 친구, 낯선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제공한다. 심지어 비용이 들더라도 도움을 제공한다(Fehr & Fischbacher, 2003; Warneken & Tomasello, 2006). 게임의 이름만큼 거창한 사랑까지 아니더라도 인간본연이 가진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마음에 불을 지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나누고 베푸는 것이 우리의 정신과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뤄보고자 한다.
🐧나눔과 행복
친사회적 지출(prosocial spending)이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개인적인 자원(예: 시간,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자신의 돈을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된다.
Dunn 연구 팀은 사회적 지출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실시했다(Dunn et al., 2008). 연구팀은 대학 캠퍼스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복(trait)과 긍정/부정정서를 포함한 간단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나서, 이들에게 5달러나 20달러짜리 지폐가 들어 있는 봉투를 주고 그날 오후 5시까지 쓰라고 했다. 돈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참여자들이 무작위 배정되었다. <개인적인 지출 조건>에 배정된 참여자들에게는 자신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선물하는데 돈을 쓰도록 했고, <친사회적인 지출 조건>에 있는 참가자들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나 자선 기부에 돈을 쓰도록 했다. 실제 개인적인 지출 그룹은 귀걸이, 만화책, 학용품, 그리고 아이스크림과 같은 것들을 사기 위해 그 돈을 사용했다. 한편, 친사회적 지출 그룹은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동생을 위해 자전거 헬멧을 사거나, 친구들에게 차를 사주는데 돈을 사용했다. 그날 저녁, 지출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눈가림 되어있는) 연구 보조원이 참가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종일 어떻게 지냈는지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참가자들은 긍정/부정정서와 전반적인 행복감을 응답했고,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 보고했다. 결과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쓰도록 지정된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돈을 쓰도록 지정된 참가자들에 비해 당일 훨씬 더 행복했다고 응답했다. 참가자들이 받은 “돈의 양($5 대 $20)”이나 “지출 내용”은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친사회적 지출의 영향은 신체적 건강에까지 미친다. 건강 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3주간의 다른 사람에게 돈을 사용하도록 지정된 참여자(평균 65세)들은 자신에게 돈을 쓰도록 지정된 참여자들에 비해 혈압 치수가 유의미하게 낮은 것(낮은 수축기, 확장기 혈압)으로 나타났다 (Willians et al., 2016). 놀라운 점은 친사회적 지출로 인한 혈압 개선의 크기는 고혈압 치료제나 운동과 같은 개입의 효과와 유사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때 행복을 느낀다는 증거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발견됐다. 연구에 참여한 두 살 미만의 유아들은 금붕어 모양의 크래커를 누군가로부터 받았을 때보다 자기가 인형 캐릭터에게 선물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보였다(Aknin et al., 2012).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는 <마사지를 받는 것>과 <마사지를 해주는 것> 중 어떤 것이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고자 은퇴한 성인을 대상으로 실험했다(Field et al., 1998). 참여자들은 3주 동안 일주일에 세 번 스웨덴 마사지(Swedish message)를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3주 동안은 일주일에 세 번 어린이집에 있는 유아들에게 직접 마사지를 해주었다. (먼저 마사지를 받는 것과 먼저 마사지를 하는 것이 피험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췄다.) 연구 결과 마사지를 받는 것보다 해주는 것이 참여자의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더 큰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참여자들은 마사지를 한 후에 불안과 우울증을 덜 겪었고, 스트레스 호르몬(i.e., 코르티솔,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은 현저히 낮아졌다. 여러 연구의 결과들을 요약해보자면 친사회적 행동은 행복과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별히, 친사회적 행동과 행복의 긍정적인 관계는 나이뿐 아니라 여러 문화에 걸쳐서도 일관되게 보이는 현상이며(Aknin et al., 2013), 여러 대상(돈, 물질, 활동)에 걸쳐서도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큰 행복감을 일으켰다. 친사회적 행동이 더 큰 행복을 불러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선행이 더 큰 행복으로 이어지기 위한 3요소
자기 결정성 이론 (Self-determination theory; Deci & Ryan, 2012)에 따르면 인간의 안녕은 “관련성(relatedness)”, “역량(competence)”, “자율성(autonomy)”, 이 세 가지 기본 욕구의 충족에 달려 있다. 나누는 것 또한 이 세가지 조건이 충족 될 때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Aknin et al., 2019).
📒연관성: 돕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선행이 행복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결의 느낌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내가 베푸는 친사회적 행동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는 기회 혹은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위한 기회를 제공할 때 더 큰 행복을 이끌어 낸다. 한 예로, 성인 90명을 대상으로 과거 친사회적 소비 경험에 대해 되짚어보라고 했을 때, 지인보다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돈을 쓰는 것을 생각할 때 더 큰 행복감을 보였다(Aknin et al., 2011). 자선 단체들이 멀거나 낯설게 느낄 자선의 원인들과 기부자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하여 기부율을 높이고자 하는 까닭도 바로 이 연관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역량: 그들의 도움이 어떻게 변화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을 때
내가 베푼 관대한 행동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지 쉽게 알 수 있다면 행복을 증진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한 연구에서는 120명의 참여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서로 다른 기관에 기부하도록 하고 어떤 그룹이 더 큰 행복을 느끼는지 실험하였다(Dunn et al., 2014). 참여자 중 절반은 유니세프에, 남은 사람들은 “Spread the net”에 기부하도록 했다. 유니세프와 “Spread the net” 모두 어린이의 건강 증진에 전념하고 있지만, 유니세프는 매우 광범위한 계획들을 다루고 있어 내가 기부한 돈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하기 어렵다. 대조적으로, “Spread the net”은 기부된 10달러마다 아이를 말라리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모기장 한 개를 제공한다는 매우 명확하고 구체적인 약속을 제공한다. 연구 결과 “Spread the net”에 기부한 참여자들의 기분이 좋아진 반면, 유니세프에 기부한 참여자들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이 연구결과는 기부금으로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구체적으로 알릴 때 기부 의도와 기부자들의 행복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자율성: 어떻게 도울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
전문가들에 따르면 친사회적 지출은 매우 개인적이어서 친사회적 지출을 위한 결정은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하며, 친구, 가족, 동료에 의해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뇌 스캔 기술을 사용한 연구에서 자선단체에 기부할 때 뇌의 보상 영역에서 활성화가 증가한다고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필요한” 기부를 하는 것에 비해 “자유롭게” 기부할 때 뇌의 활성화가 더 강했다. 19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fMRI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역 푸드 뱅크에 자발적인 기부가 허용되었을 때 이러한 기부가 의무화되었을 때보다 보상 처리와 관련된 뇌 영역에서 더 큰 활성화를 보였다(Harbaugh et al., 2007). 또한 이 연구의 참가자들은 의도적이든 자발적이든 기부한 돈이 항상 좋은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의무적이기보다는 자발적일 때 기부에 대해 10% 더 높은 만족감을 느낀다고 보고했다. 자율적 선행과 행복에 대한 일지 연구(Daily diary study; Alkin et al., 2013)에서도 내가 베푼 선행이 누군가로부터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거나 의무적이라고 느꼈을 때는 아무런 감정적 이익이 없었지만 그 선행이 좋은 목적이고 자신의 가치와 부합한 것일 때는 행복함을 느꼈다.
🐧대한민국 청소년의 친사회적 행동과 행복
2021년 아동행복 프로젝트에서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행복과 다양한 심리 요인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Friendship Quality Questionnaire (FQQ)도 설문에 포함되었는데, 이 설문은 우정의 다양한 질적 측면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을 평가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학생들은 총 40개의 문항에 대해 5점척도(전혀 아니다~ 매우 그렇다까지)에 응답했다.
FQQ에서 나누고 베풀기와 가장 관련이 깊은 문항을 꼽는다면 “우리는 작은 일이라도 서로를 많이 돕는다.”이다. 이 문항을 활용하여 나누기와 행복에 관해 대한민국 청소년들 현황을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한 개의 문항을 이용하고, 친한 친구 사이에서의 나눌고 베풀기를 물었다는 것은 큰 제한점이다)
📒결과
분석에 참여한 학생은 총1068명 (여학생 631명, 남학생 437명)이다.
남학생보다는 “여학생” (여학생=평균: 3.03,표준편차: 1.01; 남학생= 평균: 2.74, 표준편차: 1.00)이, 초,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이 작은 일이라도 서로를 많이 돕는다고 답했다(초등학생=평균: 2.80, 표준편차: 1.13; 중학생= 평균: 2.83, 표준편차: .99; 고등학생= 평균: 3.09, 표준편차: .93). 작은일이라도 서로를 돕는 친사회적 행동은 “삶의 만족도”와 “심리적 안정감”과 유의미한 정적 상관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 외 긍정적인 심리적 지표(감사, 자기 존중감, 자기 조절능력, 애착)와도 유의미한 정적 상관을 나타냈다.
📒정리하는 글
2022년의 마지막 달을 장식하는 반갑고도 갑작스런 추위.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작은 실천이 어떠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가? 쪼개 써도 없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와의 오붓한 시간과 나눔을 기대하고 있는 친구, 부모님께 나의 자원을 아낌없이 나눠보자. 기대하지 못한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출처
Aknin LB, Sandstrom GM, Dunn EW, Norton MI (2011) It’s the Recipient That Counts: Spending Money on Strong Social Ties Leads to Greater Happiness than Spending on Weak Social Ties. PLoS ONE 6(2): e17018.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017018
Aknin, L. B., Barrington-Leigh, C. P., Dunn, E. W., Helliwell, J. F., Burns, J., Biswas-Diener, R., Kemeza, I., Nyende, P., Ashton-James, C. E., & Norton, M. I. (2013). Prosocial spending and well-being: Cross-cultural evidence for a psychological universa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4(4), 635–652. https://doi.org/10.1037/a0031578
Aknin, L. B., Hamlin, J. K., & Dunn, E. W. (2012). Giving Leads to Happiness in Young Children. PloS one, 7(6), e39211.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03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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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ld, T. M., Hernandez-Reif, M., Quintino, O., Schanberg, S., & Kuhn, C. (1998). Elder Retired Volunteers Benefit From Giving Massage Therapy to Infants. Journal of Applied Gerontology, 17(2), 229–239. https://doi.org/10.1177/073346489801700210
Harbaugh, W. T., Mayr, U., & Burghart, D. R. (2007). Neural responses to taxation and voluntary giving reveal motives for charitable donations. Science (New York, N.Y.), 316(5831), 1622–1625. https://doi.org/10.1126/science.114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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