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필요성
*이 내용은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의 마인드웨어: 생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원저: Mindware: Tools for Smart Thinking), 10장 자연실험과 정식실험 (pp. 249-268) (이창신 역)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비과학적 접근은 시간과 비용만 허비한 후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Nisbett, 2016). 행복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다. 행복에 대한 접근을 비과학적으로 한다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비극으로 끝날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사람들은 좋은 의도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피해자들이 겪을 정신적 고통을 치유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른바 고통 상담원이라는 사람들이 실험군 참가자들을 격려해, 참가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감정을 묘사하고, 타인의 반응에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의 스트레스 증상을 토론하게 한다. 상담원은 참가자에게 그들의 반응은 정상이며 그런 증상은 시간이 갈수록 차츰 수그러든다고 확신시킨다. 9/11 사건이 터진 뒤에 뉴욕에 이런 고통 상담원이 9,000여 명이나 투입되었다.
내가 보기엔 이런 식의 고통 상담이 아주 훌륭한 생각 같았다. 하지만 행동과학자들이 10여 차례에 걸쳐 무작위 실험을 실시해 ‘중대사건 스트레스 보고 CISD: Critical incident stress debriefing’ 효과를 조사한 결과, 그런 보고가 우울, 불안, 수면장애 같은 스트레스 증상을 완화한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Roberts et al., 2009). 더 문제는 CISD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사고후유정신장애에 시달릴 확률이 더 높았다는 사실이다(Wilson, 2011).
이때 행동과학자들은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개입을 몇 가지 찾아냈다. 중대 사건이 일어난 지 몇 주 후, 사회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 James Pennebaker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게 연이어 나흘 밤 동안 비공개로, 그 충격과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가장 깊은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쓰게 했다(Pennebaker, 1993). 그게 전부다. 상담원 면담도 없고, 집단치료도 없고, 정신적 충격 대처법에 대한 조언도 없다. 그저 쓰면 그만이다. 이 훈련은 큰 상심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효과 만점이다.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는 글쓰기 훈련이 효과가 있는 이유가 고통의 시기와 잠복기가 지난 사람들에게 그 사건과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이해하는 이야기를 만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훈련의 효과가 가장 큰 사람은 처음에는 뒤죽박죽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나중에는 일관되고 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그 사건에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로 보인다.
이밖에 선의로, 십대 아이들이 또래 압력에 시달려 범죄를 저지르고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취하려다 오히려 CISD보다도 더 실망스러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수집 년 전, 뉴저지에 있는 라웨이주 교도소 수감자들이 위험한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범죄의 참담한 결과를 경고하기 위해 무언가를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교도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면서, 교도소에서 자행되는 강간과 살인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A&E 채널에서 방영되어 방송 상을 수상한 어느 다큐멘터리는 이 프로그램에 ‘충격 갱생 Scared Straight’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 뒤 이 명칭과 행위가 미국 전역에 널리 퍼졌다.
충격 갱생 프로그램은 효과가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일곱 차례의 실험을 실시했다(Wilson, 2011). 그 결과, 일곱 차례 실험 모두 충격 갱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어떤 개입도 받지 않은 대조군 아이들보다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 수는 평균 13퍼센트 증가했다.
라웨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스트뉴저지에서 이제까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5만 명이 넘는다. 5만의 13퍼센트면 6,500명이다. 의도는 좋았지만 갱생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범죄자 수다. 심지어 이는 뉴저지만의 숫자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지역에서도 수없이 모방되었다. 워싱턴주 공공정책 연구소 Washington State Institute for Public Policy는 충격 갱생 프로그램에 1달러가 사용될 때마다 범죄와 감금 비용이 200달러 이상 든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약물남용방지교육 D.A.R.E: Drug Abuse Resistance Education도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다. 각 지역 경찰관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술을 80시간 훈련받은 뒤에 교실을 찾아가 약물 복용, 음주, 흡연을 줄이기 위한 정보를 전달한다. 각 지방 정부와 연방 정부는 이 사업에 연간 무려 10억 달러를 지원했다. 약물남용방지교육 홈페이지에는 미국 학교의 75퍼센트에서, 그리고 세계 43개국에서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실행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청소년의 약물 사용은 줄지 않았다(Wilson, 2011). 하지만 주최 측은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과학적 증거를 들어 프로그램의 실패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운다. 주최 측이 애초의 프로그램을 보충하거나 대체할 목적으로 내놓은 여러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외부 기관의 철저한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사회심리학자의 성공한 프로그램은 십대와 성인의 마약 복용과 음주에 관한 정보도 제공한다. 자신이 속한 또래집단의 실제 마약 복용율 혹은 음주율은 개인이 추정하던 것보다 낮기 마련이며, 이에 따라 이 정보를 확인한 사람들은 보통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또래가 주로 하는 행동습관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행동을 자신의 또래집단과 유사하게 수정하려는 동기가 작동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작용에 의해 마약과 음주를 줄일 수 있다(Prentice & Miller, 1993).
이처럼 비과학적 접근은 비용만 발생시키고,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 (2016). 자연실험과 정식실험. 마인드웨어: 생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원저: Mindware: Tools for Smart Thinking)(이창신 역) (10장, pp. 249-268), 서울, 서울: 김영사.
Pennebaker, J. W. (1993). Putting stress into words: Health, linguistic, and therapeutic implications. Behaviour Research and Therapy, 31(6), 539-548.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0005796793901054
Prentice, D. A., & Miller, D. T. (1993). Pluralistic ignorance and alcohol use on campus: some consequences of misperceiving the social norm.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4(2), 243-256.
http://faculty-gsb.stanford.edu/millerd/docs/1993jpsp.htm
Roberts, N. P., Kitchiner, N. J., Kenardy, J., & Bisson, J. (2009). Multiple session early psychological interventions for prevention of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Cochrane Database of Systematic Reviews 2009, Issue 3. Art. No.: CD006869. DOI: 10.1002/14651858.CD006869.pub2.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002/14651858.CD006869.pub2/full
Wilson, T. (2011). Redirect: The surprising new science of psychological change. New York, NY: Penguin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