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영향력 있는 tv 프로그램이 뭐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유퀴즈” 를 꼽을 것이다. 유퀴즈는 분야를 막론하고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초대해 그들의 뒷(?) 이야기를 나누는 한국 대표 예능 토크쇼이다. 한번은 배우 김혜자를 게스트로 모시고 그녀의 호소력 높은 연기력의 근원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보게 되었다. 김혜자의 대답은 참 의외였다. 바로 널브러짐이였다. 널브러짐에서 열정적인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김혜자의 답변은 번아웃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던 나에게 충격적 메세지인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 후로 나는 이 널브러짐이 오래갈까 조바심 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 널브러짐 끝에 펼쳐질 어떠한 종류의 강력한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일정한 회복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배우 김혜자의 말을 빌려 널브러짐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러한 상태를 표현하는 보다 전문적인 단어를 찾아본다면 ‘번아웃 (burnout)’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번아웃이 무엇인지, 이를 보다 지혜롭게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번아웃이란?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은 과도한 직장 스트레스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직원(특별히 남을 돕는 전문 그룹)들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1970년 처음 사용했다. 번아웃은 지속된 스트레스와 좌절로 인해 신체 및 정서적 에너지와 동기가 모두 소진된 상태를 말한다. 로켓 엔진의 작동이 멈춘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는 번아웃의 또다른 사전적 정의를 생각해보면 내몸에 어떠한 에너지도 남지 않아 앞으로 한발자국도 더 내딛을 수 없는 극도의 소진상태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될것이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번아웃은 3개의 하위 개념 “소진 (exhaustion)”, “냉소주의(cynicism)”, “비효능감(inefficacy)” 으로 이뤄져있다고 한다. 하지만 또 다른이들은 “정서적 소진(emotional exhaustion)” 을 번아웃을 이루는 단일 개념으로 제시한다.
번아웃 취약 계층은 누구일까? 여러 조사에 따르면 헬스케어, 사회 복지 계열 종사자가 번아웃 증후군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번아웃은 의사나 간호사와 같이 다른 사람들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서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에 자기 희생의 어두운 면(Dark-side of self-sacrifice)이라고도 불리운다. 이처럼 번아웃은 주로 업무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직업 관련 증상으로 지정, 국제질병분류에 포함시켰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을 떠올려본다면 번아웃 취약 그룹은 의료인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번아웃이 특정 그룹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번아웃 증후군은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과도한 업무와 노동에 노출된 경우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으며,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서 보다 빈번히 나타난다.
우울증과 번아웃의 대표 증상이 지치고 쳐지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 다는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두 질병을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번아웃은 대부분의 문제가 업무에 국한되어 있는 반면, 우울증의 경우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 전반에 걸쳐있다. 우울증의 또 다른 전형적인 증상인 “낮은 자존감”, “절망감”, “자살 충동”은 번아웃 증상과는 구별되는 것들이다. 번아웃을 경험한 사람이 우울증을 겪을 위험이 높기는 하지만, 번아웃이 무조건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우울증과 번아웃을 구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진단에 따른 처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던일을 멈추고 멀리 여행을 떠나라는 처방은 번아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유익할 수 있다. 하지만 우울한 사람에게 이것은 적절한 치료법이 아닐 수 있다. 우울증은 업무외의 다른 정서적 어려움을 경험하며, 자살 충동과도 높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심리적, 약물 처방이 동반되어야 한다.
번아웃을 피할 수 없는 세상: 몰입하기와 운동하기
앞서 언급한 유명 배우 김혜자의 경우는 한 작품이 끝나면 충분한 보상과 쉼이 기다리고 있어 번아웃을 널브러짐으로 충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쉼이 충분히 보장되어있는 현대인은 드물다. 일은 끊임없이 생기고 연차는 제한되어있다. 바쁘고 여유없는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고 번아웃이 왔을때 지혜롭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몰입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일 수록 번아웃을 적게 경험한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Mosing 연구팀(2018)은 10,000명의 스위스 쌍둥이 데이터를 활용하여 몰입, 우울감, 정서적 소진(번아웃의 대표 요인) 간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몰입 성향을 향상시키면 우울, 정서적 소진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몰입의 예방 효과는 쌍둥이의 유전적, 가정 요인들을 통제한 후에도 유지가 되었다. 본 연구에 사용된 몰입의 영역이 특정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직업, 여가와 같이 다양한 영역을 포함하고 있어 어떤 영역에서든 몰입을 경험하는 것이 번아웃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안되었다. 바쁜 일상중에라도 몰입할 수 있는 활동들을 생활 곳곳에 심어놓고 정신 건강 관리를 하는것도 좋은 전략일것 같다. 번아웃을 막지 못했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미국의 유명한 뇌과학자 웬디 스즈키도 상당한 업적을 이룬뒤 번아웃을 경험했다. 그녀는 뇌과학자답게 번아웃을 경험할 때의 뇌를 연구하여 “healthy brain, happy life”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부화된 뇌를 그냥 쉬도록 내버려 두는 것보다 뇌를 균형있게 사용하고 새로운 자극을 제공 할 때 잠든 뇌가 깨어나 기억력, 창의성이 향상된다고 한다. 특별히 운동을 하면 신체는 살아있다고 느끼게 되고, 뇌의 기능은 더욱 향상된다. 거창한 자극일 필요는 없다. 도리어 큰 변화는 뇌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전에는 없었던 산책 일정을 추가해 보는 정도도 뇌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된다고 한다.
정리하며
긴 장마가 지나가고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휴가에는 널브러짐으로 뇌에 쉼을 주고, 소소하고 신선한 경험들로 뇌를 자극시켜주면 어떨까.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번 아웃도 이젠 당황하지 않고 잘 다스릴 수 있는 내가 되는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운동화를 신고 동네 한바퀴.
출처
Institute for Quality and Efficiency in Health Care, (2020, Jun 18).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Depression: What is burnout?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279286/
Mosing, M. A., Butkovic, A., & Ullen, F. (2018). Can flow experiences be protective of work-related depressive symptoms and burnout? A genetically informative approach.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226, 6-11.
Suzuki, W., & Fitzpatrick, B. (2016). Healthy brain, happy life: a personal program to activate your brain and do everything better. First Dey Street Books paperback edition. New York, NY, Dey St., an imprint of William Morrow Publishers. World Health Organization (2019, May 28). Burn-out an “occupational phenomenon”: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https://www.who.int/news/item/28-05-2019-burn-out-an-occupational-phenomenon-international-classification-of-diseases
글: 김주현(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연구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