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수업과 함께 성장한 아이들 #1편
🌱선생님! 지금도 행복 수업해요?
🌱그런데 사회에서 행복 수업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2011년 행복수업 시범학교부터 현재까지 행복수업을 지속해 온 선생님의 제자들이 어느덧 성장하여 사회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행복수업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행복 수업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행복 수업으로 꽃 핀 아이들의 이야기 Blooming Happiness, 지금 시작합니다.
2010년부터 행복 수업을 시작했다. 행복 수업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교사가 꿈이었던 나는 초임 시절도 좋았지만, 교사로서 지금의 만족도가 더 높다. 그 이유에는 행복 수업의 역할이 꽤 크다. 2010년을 시작으로 중학교에서 9년, 고등학교에서 4년째 행복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행복 수업 연차가 쌓이다 보니 제자들의 행복 성장 스토리도 함께 쌓여간다. 일상의, 일상에 의한, 일상을 위한 행복 스토리를 모두와 공유해 보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 졸업하자마자 발령을 받았다. 교사 임용 소식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첫 발령지는 감사하게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광명이었다. 광명에서의 중학교 4년, 고등학교 5년은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 시절에는 매일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했고, 학생들에게는 ‘입시 결과가 좋은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고 말하며 입시 지도를 했다. 그런 나를 따르는 학생들을 보며 보람과 행복을 느꼈다.
그러던 중 지역 만기로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가끔 회나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던 지역으로 배정받았다. 내심 고등학교 발령을 원했지만 중학교로 가게 되었고, 3학년 담임을 맡았다. 개학 후 첫날, 조회 시간에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밝고 무난해 보였다. 교무실에 가니 연배 있는 선생님께서 엄청난 파일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잘 봐둬.”라고 한마디 하시고는 사라지셨다. 상자를 열어보니 학생 한 명에 대한 상담 일지와 사건 경위서(2년간의 기록) 등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반 학생이었다. ‘이걸 보고 뭐 어쩌라는 거지?’ 순간 답답했다. 상자를 준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선생님, 한 달만 버텨요. 그 아이 한 달 안에 징계 떨어지면 이제 우리 학교 못 다녀요. 아! 그리고 선생님, 웬만하면 그 아이 건드리지 말아요.”
그렇게 대화는 끝났고, 허탈한 마음을 안고 정신없이 업무와 수업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전에 있던 학교와 시스템이 다르다 보니 새로 전근을 온 동료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친해졌다. 그런데 숨겨져 있던 학생들의 개념 없는 모습들, 거침없이 나오는 폭력적 행동 등 고등학교에서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순간순간 벌어지는 현실에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무실에 첫날 받았던 상자에 적혀있던 학생 이름이 들려왔다.
3월 마지막 주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우리 반에서 수업을 하던 교과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며 교무실로 오셨다.
“00이가 수업 시간에 나한테 욕을 하고 나가 버렸어요. 나 이거 못 참아요.”
그리고는 곧 00이의 어머니가 학교로 오셨다. 어머니는 눈물을 한참 흘리신 뒤 말을 이어가셨다. 아이가 학교에 있길 힘들어해서 상담받는 중이고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00이가 1년만 잘 버텨서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애원하셨다. 며칠 뒤 선도위원회가 열렸고, 학교 측에서는 그동안의 모든 기록을 종합해서 강제 전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담임인 나는 00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자고 애원했다. 이후 같은 일이 생기면 그때는 모든 처분을 다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학교에서는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었고, 00학생과 이렇게 두 번째 처음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생활지도에 에너지를 쏟는 걸까? 다시 고등학교로 가고 싶다. 이 학교는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 너무 힘들어’ 등 스트레스와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문에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이 행복하다’라는 문구를 발견하게 되었고, 뜻이 맞는 동료 교사 3명과 함께 연수를 신청했다. 서울대행복연구센터에서 하는 첫 번째 ‘교사 행복 연수’였는데 연수받는 내내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교사 행복 연수는 힘들고 지쳐있던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다. 연수가 끝난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갈 힘이 났다. 먼저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학생들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우리 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00학생과 나는 약속했다. 교실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땐 언제든지 선생님을 찾아오라고. 그러면 어머님께 연락드려 조퇴를 시켜주었다. 그러면서 00이와 자주 이야기하게 되었고 현장 체험학습으로 가족 여행을 하면서 00이의 상태는 점차 좋아졌다. 2학기에는 반 친구들과 단합대회를 하며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간도 가졌다. 나의 행복이 학생들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낀 중요한 시기였고, 나와 함께했던 제자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학기에는 00이를 포함하여 반 아이들과 행복 수업을 진행했다. 00이도 다행히 행복 수업을 잘 따라와 주었고, 무사히 졸업도 했다. 졸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00이는 지금 태권도 관장이 되어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행복 수업을 했던 녀석에게 지금도 연락이 온다.
“선생님! 지금도 행복 수업해요?
그런데 선생님, 사회생활에서 행복 연습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하면서…
2탄 # 꿈과 꿈의 연결(조종사가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