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이다. 새로운 창법과 모습에서 오는 신선함, 어리숙함에서 느껴지는 친근감,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무모한 자신감까지 재밌는 요소를 찾아보라면 한두개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심사평이다. JYP 박진영이 심사 중 남긴 명 대사가 있다. 공기 반 소리 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이 phrase는 말하듯 부르는 자연스러운 창법을 강조한다. 굳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말하듯 읊조리듯 편하게 불러야 맛이 살고 듣는 이의 공감을 살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글쓰기에도 공기는 필수다. 수려하고 완벽한 문장도 수두룩하지만, 실제 그럴싸한 멋진 문장을 쓰려고 애를 쓰는 순간 내가 표현하려던 것에서 멀어질 수 있다. 그 부자연스러운 느낌은 고스란히 읽는 이에게 전해지고, 결국 나는 글쓰기에서 멀어진다.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는 공기반, 글쓰기 반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표현적 글쓰기는 내가 느끼는 것에 대해 숨 쉬듯 말하듯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글쓰기다. 표현적 글쓰기 과정에서 철자법, 주어-서술어 일치 등 형식이나 기타 쓰기와 관련된 관례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표현적 글쓰기의 관심은 서사의 내용에 담긴 사건, 기억, 사물, 인물보다는 감정에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 지보다 일어난 일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표현적 글쓰기의 효과
표현적 글쓰기가 개인에게 미치는 효과는 그야말로 상당하다. 여러 주요 연구에서 표현적 글쓰기가 정신 건강(불편감 감소, Smyth, 1996)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결과를 제시했다(면역 기능 향상, Pennebaker, Kiecolt-Glaser, & Glaser, 1988; 병원 방문 감소, Pennebaker, Colder, & Sharp, 1990, 직장 결근율 감소, Francis & Pennebaker, 1992; 평균 성적 향상(Pennebaker & Francis, 1996; 호흡기 문제 감소, Greenberg, Wortman, & Stone, 1996). 글쓰기가 심리치료 역할을 한 것이다.
정신 분석이나 인지, 행동 치료 등 다양한 형태의 심리치료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과정은 개인이 문제를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열어놓고 대화(discuss)하는 것이다. 경험을 공개 혹은 노출하는 단순한 행동이 고통을 줄여준다. 공개야 말로 치료 결과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는 강력한 치료제인 셈이다 (Mumford, Schlesinger, & Glass, 1983, Pennebaker, 1997).
표현적 글쓰기의 매커니즘
내 개인적 감정과 생각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것, 특히 표현적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꺼내는 것이 왜 건강에 도움이 될까?
“글쓰기와 관련하여 두가지 명확한 결과가 있다. 하나는 표현적 글쓰기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무도 글쓰기가 건강에 왜 유익한지 모른다는 점이다(King 2022)”
그렇다. 표현적 글쓰기의 이점은 많이 강조되어 왔지만, 왜 좋은지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King (2022)과 같은 질문을 가진 심리학자들은 표현적 글쓰기가 건강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Frattaroli, 2006).
절제 이론: 풀어야 해소 돼.
절제 이론은 프로이트 학설-억제되어 있는 부정적 생각과 느낌은 개인에게 해롭기 때문에 이를 분출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을 바탕으로 한다. 대화나 글쓰기 그 어떤 방식으로라도 억눌린 부정적 생각과 느낌을 배출할 때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절제 이론이 표현적 글쓰기의 긍정적 효과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Greenberg et al.(1996)의 한 실험연구에서 참여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글을 작성하게 하였다. 한 그룹에게는 실제 경험한 트라우마와 관련한 글쓰기를(A 그룹), 다른 그룹에게는 그들이 경험하지 않은 트라우마를 상상해서 글쓰기(B 그룹), 비교군으로 설정된 또 다른 그룹은 표현적 글쓰기가 아닌 다른 글쓰기를 하도록 하였다(C 그룹). 세 그룹(A,B,C 그룹)간 질병으로 인한 평균 병원 방문 횟수를 비교해본 결과, 실제든 상상이든 트라우마 관련 글을 작성한 두 그룹 (A,B) 모두에게서 질병 관련 병원 방문 횟수가 유의미하게 줄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감정에 대해 표현적 글쓰기를 한 참여자들도 긍정적 효과를 경험한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부정적 사건과 관련하여 억눌린 감정이 많다고 답변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에게 표현적 글쓰기를 실시한 뒤 두 그룹의 건강 결과를 비교해 보았다. 절제된 감정을 표출할수록 건강에 이롭다면 절제된 생각이 많은 그룹의 건강이 반대 그룹보다 더 좋아져야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두 그룹간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Frattaroli, 2006). 종합해볼 때 억제된 감정 표출이 표현적 글쓰기의 효과를 설명하는 유일한 메커니즘은 아닐 수 있다.
인지적 과정이론: 쓰다보면 정리 돼
인지적 과정 이론에 따르면, 한 개인은 표현적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상황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고 통찰하게 되며, 자기 도식에 경험을 통합하고 조직화한다. 이러한 인지적 활동은 궁극적으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Pennebaker(1993)는 표현적 글쓰기 과정을 통해 가장 큰 효과를 본 사람들의 글을 살펴봤다. 분석 결과 이들의 글에서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왜냐하면, ~를 초래하다), 이해하고 통찰하는 단어의 사용이 늘어났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상황에 대해 통찰하고 종합하는 내용이 많을수록 글쓰기의 효과 또한 커지는 것이다. 물론 부정정서를 표출하는 글쓰기 과정에서 경험하는 카타르시스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다. 표현적 글쓰기에 긍정 정서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적당한 수준에서 부정정서 단어를 사용하는 것 또한 정신건강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말이다(Frattaroli, 2006). 하지만 이것만으로 표현적 글쓰기의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표현적 글쓰기의 유익함을 보다 충분히 누리려면 사건에 대해 이해하고, 정리하고, 통합하는 과정이 꼭 있어야 한다.
자기조절이론: 어떤 상황이든 해결점은 있어.
Cameron and Nicholls(1998)은 자신이 마주한 문제와 해결 방법을 써보는 문제해결 글쓰기 방식도 일반적인 표현적 글쓰기와 비슷한 수준의 유익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했다. 또한 King and Miner (2000)는 트라우마 경험으로 인한 이점에 대해 글을 쓸 때 질병으로 인한 병원 방문 횟수를 감소시켜주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일반 표현적 글쓰기 활동으로 인한 효과와 비슷한 수준이였다. 문제 해결 글쓰기는 일종의 성공 경험과도 같다(Lepore, Greenberg, Bruno, and Smyth, 2002). 자기조절 글쓰기 과정은 자신이 마주한 트라우마나 문제, 도전들이 제법 다룰 만하다고 느끼게끔 해주고, 이는 결국 개인의 부정 정서를 낮추고 다른 여러 행복지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글 쓰는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고 통제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므로 글을 쓰는 이는 감정 조절에 대해 더 새롭고 더 강력한 자기 효능감을 맛보게 된다(Frattaroli, 2006).
표현적 글쓰기의 시작
공기반 소리반, 숨쉬듯 말하듯 시작되는 나의 표현적 글쓰기는 단순 절제 감정 표출을 넘어 인지적 통합과 자기 조절을 가능케 하는 심리 치료제로 발전될 수 있다. 아래와 같은 간단한 지침(Pennebaker, 1997)을 따라 표현적 글쓰기를 시작해보자. 다가오는 2024년 새로 장만한 다이어리를 표현적 글쓰기로 가득 메워보자.
표현적 글쓰기
기간: 하루에 15분-30분, 최소 연속 3일에서 4일동안 하루에 15-30분
방법: 앞으로 3-5일 동안 삶에 영향을 준 매우 중요한 감정적인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글로 써보세요.
글을 작성할 때 본인의 깊은 감정과 생각을 탐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의 내용은 부모님, 연인, 친구 또는 친척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과거, 현재, 미래의 나에 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 기간동안 하나의 주제에 집중해도 좋고, 매일 다른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철자법, 문장 구조, 혹은 문법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으세요. 유일한 규칙은 일단 쓰기 시작하면,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계속 써 내려가는 것입니다.
출처
Cameron, L. D., & Nicholls, G. (1998). Expression of stressful experiences through writing: Effects of a self-regulation manipulation for pessimists and optimists. Health Psychology, 17(1), 84–92. https://doi.org/10.1037/0278-6133.17.1.84
Francis, M. E., & Pennebaker, J. W. (1992). Putting stress into words: The impact of writing on physiological, absentee, and self-reported emotional well-being measures. American Journal of Health Promotion, 6(4), 280-287. doi:10.4278/0890-1171-6.4.280
Frattaroli, J. (2006). Experimental disclosure and its moderators: A meta-analysis. Psychological Bulletin, 132(6), 823–865. https://doi.org/10.1037/0033-2909.132.6.823
Greenberg, M. A., Wortman, C. B., & Stone, A. A. (1996). Emotional expression and physical health: Revising traumatic memories or fostering self-regul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1(3), 588–602. https://doi.org/10.1037/0022-3514.71.3.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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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L. A. (2002). Gain without pain? Expressive writing and self-regulation. In S. J. Lepore & J. M. Smyth (Eds.), The writing cure: How expressive writing promotes health and emotional well-being (pp. 119 – 134).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King, L. A., & Miner, K. N. (2000). Writing about the perceived benefits of traumatic events: Implications for physical health.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6(2), 220-230. https://doi.org/10.1177/014616720026400
Lepore, S. J., & Greenberg, M. A. (2002). Mending broken hearts: Effects of expressive writing on mood, cognitive processing, social adjustment and health following a relationship breakup. Psychology and Health, 17(5), 547-560. https://doi.org/10.1080/08870440290025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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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ebaker, J. W., Kiecolt-Glaser, J. K., & Glaser, R. (1988). Disclosure of traumas and immune function: Health implications for psychotherapy. Journal of Consulting and Clinical Psychology, 56(2), 239–245. https://doi.org/10.1037/0022-006X.56.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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