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연차가 쌓여도, 매일을 반복해도 적응이 안되는 것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출근 전 기상이다. 출근 전 침대속에서 기상과의 힘든 싸움을 하던 나에게TV 프로그램 등장한 연예인들의 유사 경험담은 ‘나 혼자가 아니였어’라는 안도와 함께 사회적 지지 그 이상의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유퀴즈 진기주님: “……..그 누워있는 한 1-2분…5분까지…시간 동안…..아 오늘 반차를 쓸까?…… 하……진짜 그 생각 계속 하고… 그리고 그 아침에 그 이불에서 굉장히 철학적인 생각을 해요 내가 이 일을 왜 하는가”
나 혼자 산다 (15년차 MBC 아나운서 K-직장인) 김대호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되는 게 출근인 것 같아요…”
평생을 고생할 것만 같은 출근이고 직장생활이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직장 내 승진이나 더 나은 조건으로의 이직을 바라고 꾀하는 것은 직장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경제적 이익 그 자체만으로도 직장내 어려운 일을 마주하고 마주하기 어려운 동료들 간의 어려움도 해결해가게 하는 삶의 든든한 원동력이다. 금융 치료는 강력하다. 돌아보면 너무 일이 하기 싫고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할 때는 “월급 받으니까 그냥 하자” 라는 단순한 생각이 나를 추켜세워줄 때도 많지 않던가.
그럼에도 노동의 목적이 경제적 이익, 생계 수단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노동은 나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경제적 이득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더해준다. 인간의 노동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논의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인간 삶 자체가 노동을 원한다는 진화론적 접근이다.
노동은 삶의 수단(mean)일 뿐만 아니라 삶의 주요 욕구(prime want)이다.
-by Karl Marx
노동이 삶의 수단이 아니라 내 삶의 (인간의) 주요 욕구라니. 누군가에게는 부정하고 싶은 대목일 수 있지만 인류는 그렇게 진화, 발전, 유지되어 왔다.
철학자들이나 인류학자들은 인간을 가리켜 노동하는 존재라고 불러왔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존 듀이(John Dewey)와 같은 철학자들은 노동, 즉 일하는 것은 인간을 결정짓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Deranty, 2019)
인간은 다른 여타 동물과 같이 환경에 원활하게 적응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은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약점을 보완해야만 했다. 인류는 자신을 둘러싼 생태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사용할 수 있거나 피해야 하는 자연 과정에 대해 학습하고, 습득한 지식을 도구나 무기를 만드는 데 적용했다. 도꼬마리라는 식물의 가시를 모방해 만든 “찍찍이(벨크로)”, 빙글빙글 떨어지는 단품 열매를 본뜬 “프로펠러”는 진화를 통해 적응한 생물체의 구조와 기능, 시스템 등을 적용한 이른바 인간의 생태모방기술을 통해 탄생했다. 이처럼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기술을 습득하며, 환경에 적용하는 “일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다양한 기후와 지리적 상황에 적응하게 되었다.
또한 인간은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교체되면 그 시대의 특정 생존 기술과 지식을 새롭게 학습해간다. 흥미롭게도 인간은 학습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젊은 세대에 대한 관용과 사회적 행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전적 특질이 선택되어 진화했다고 한다(Sterelny, 2016). 협력(Cooperation)는 인류를 이어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뛰어난 과학자도 자동차 수리를 위해서 기술자를 찾아가야 한다. 타인과 함께 그리고 타인을 위하여 일할 때 인류는 유지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발생한 애착이론에서도 부모와 자녀의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가 야생에서의 생존의 확률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Cacioppo와 동료들이 제안한 외로움의 진화론적 이론(Evolutionary Theory of Loneliness)에 따르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생존과 종의 보존을 위해 타인(집단)과 함께하며 유대를 형성하고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선천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Cacioppo & Hawkley, 2009; Cacioppo et al., 2016). 따라서 사회적 고립은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를 알아차리도록 사회적 통증인 외로움을 느끼도록 진화해 왔다(Cacioppo & Hawkley, 2009; Cacioppo et al., 2016). 이러한 점에서 외로움은 단기적으로 사회적 연결을 촉진하는 적응적 기능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Hawkley & Cacioppo, 2010).
기술개발을 통해 대부분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직업이 첨단 기술로 대체된다고 하여도 인간은 그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학습하고 전문가들을 모방하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일할 것이다. 미래에 어떠한 형태와 종류의 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인간 존재가 가진 노동을 향한 달음질에 행복을 더할 수는 없을까?
Morse와 Weiss (1955)에 따르면 재정이 충분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일하고 싶어하는데 그 이유는 일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보다 큰 사회에 소속 되어있다는 느낌 (사회적 소속감), 무언간 할 일이 있다는 느낌, 삶에 목적이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직장을 다녀서, 월급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직장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긍정적 기능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기능은 비업무적 활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라고 한다. 은퇴 후 삶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그것이 소속감이든 삶의 목적 성취든) 취미 생활을 넘어 직장 혹은 소일거리를 찾는 중고령층 성인을 생각하면 너무도 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물론 직장내 동료와의 관계, 환경, 업무 종류 등 다양한 요소가 직업 만족도와 행복감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이 인간의 주요 욕구라는 점, 노동 자체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여러 긍정적 기능을 생각할 때 눈앞에 놓인 일감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Cacioppo, J. T., & Hawkley, L. C. (2009). Perceived social isolation and cognition.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3(10), 447–454.
Cacioppo, S., Bangee, M., Balogh, S., Cardenas-Iniguez, C., Qualter, P., & Cacioppo, J. T. (2016). Loneliness and implicit attention to social threat: A high-performance electrical neuroimaging study. Cognitive neuroscience, 7(1-4), 138-159.
Deranty, J. P. (2019.). Work is a fundamental part of being human. Robots won’t stop us doing it. The Conversation. https://theconversation.com/work-is-a-fundamental-part-of-being-human-robots-wont-stop-us-doing-it-127925
Hawkley, L. C., Thisted, R. A., & Cacioppo, J. T. (2009). Loneliness predicts reduced physical activity: cross-sectional & longitudinal analyses. Health Psychology, 28(3), 354-363.
Morse, N. C., & Weiss, R. S. (1955). The function and meaning of work and the job.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20(2), 191-198.
Sterelny, K. (2016). Cooperation, Culture, and Conflict.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67(1), 31–58. http://www.jstor.org/stable/43946106